![]() | 오래된 뿔 1 고광률 | 은행나무 | 20121018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요즘 제작되고 있는 영화 중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 있다. 화려한 캐스팅이나 어마어마한 제작비 등으로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제작을 엄두내지 못했던 한 작품이 천신만고 끝에 관객들의 모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설득 끝에 출연 배우들을 모아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26년”이다. 그런데 이 작품 외에도 지금껏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은 많았다. 아직도 1980년대의 아픈 역사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고 고광률 작가의 <오래된 뿔>도 그 역사의 연장선 위에 써졌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아내가 도로에서 깡패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아내의 남편은 신문사 기자로 있는 박갑수였다.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당황했을 테지만 갑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신문사를 떠났던 갑수는 카페에서 시비 끝에 칼에 피습을 당해 죽음에 이른다. 이 일련의 사건이 의심스러웠던 동료 기자 양창우는 갑수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된다.
막연히 심증만 있을 뿐 갑수의 죽음이 단순 사고인지, 계획된 범죄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창우는 예전에 갑수가 흘리고 갔던 명함을 단서로 하여 사건에 접근해 나간다. 그리고 파고들어갈수록 이 사건은 뿌리는 1980년 광주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이 밝혀진다. 권력을 유지하려던 기득권층은 그들의 폭력과 억압 앞에 쓰러지고 짓밟혔던 민중의 고통을 잊었을지 몰라도 그 때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죽은 박갑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뿔>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가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시선에 비춰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 항쟁 등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나는 1980년대의 광주를 모른다. 그 때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들이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지 지금도 이렇듯 소설이나 영화로 대신 접할 뿐이다. 하지만 강풀 작가의 웹툰으로 “26”년을 봤을 때나 <오래된 뿔>을 읽을 때만큼은 마치 내가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 가족이 된 느낌이다.
소중한 형제,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 고작 가진 자들의 돈과 권력을 지키는데 희생되었다는 사실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가해자인 그들이 정치인, 언론인, 경제인 등으로 탈바꿈하여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땅의 곳곳에서 사회지도층으로 군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부당한 현실이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그것을 반영한 듯 <외로운 뿔>의 에필로그를 보고 있어도 씁쓸함만 남는다. 정녕 이 썩은 나무의 밑둥치는 파내버릴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불가능하다며 손을 내저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의 세상이 적어도 30년 전보다 더 좋은 세상이길 바란다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