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데츠키 행진곡 요제프 로트(Joseph Roth), 황종민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21005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앙코르 곡으로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그것이다. 연주 중에 관객들이 마음껏 박수를 칠 수 있는 곡이자 지휘자가 관객의 박수를 지휘하는 곡이기도 한 이 연주곡은 위풍당당한 병사들의 행진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지금까지 나는 "라데츠키 행진곡"이라고 하면 당연히 이 클래식 음악을 연상했었는데 이제는 요제프 로트의 동명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작곡 배경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당시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최근에 베토벤의 작품에 대해 알아보다가 나폴레옹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했던 1800년대 초반의 역사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에 대해서도 예전에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해서도 스치듯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의 시대 배경도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 통치기이며, 3대-요제프, 프란츠, 카를-에 걸쳐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한 트로타 가문의 남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본래 트로타 家는 농사나 짓고 일반 병사로 전쟁에 참전하던 보잘 것 없는 집안이었다. 그러다 가문의 신분이 상승되게 된 계기는 요제프 트로타 소위가 쏠페리노 전투에서 젊은 황제의 목숨을 구하면서부터였다. 전장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황제의 섣부른 행동으로 적의 표적이 되자 요제프 트로타는 목숨을 걸고 황제를 보호하여 그를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과 폰 지폴리에라는 귀족칭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우연찮게 황제를 구한 이 사건이 영웅담처럼 부풀려져 왜곡되는 것에 반대하여 이를 바로잡고자 애썼지만 결국 묵살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분열의 조짐이 보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허약한 기반을 튼튼히 하고 왕가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도시 곳곳에는 전쟁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도 그러한 연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제프는 이러한 현실에 실망한 나머지 전역하여 조용히 물러나고 그의 아들만큼은 군인이 아닌 관료로서의 삶을 살길 바랬는데 아버지의 희망대로 프란츠는 군수로 살았지만 그의 인생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리고 프란츠의 아들 카를은 할아버지처럼 용맹한 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여린 성품의 그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제국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던 그는 전역을 하고 다시 발발한 전쟁터에서 군인들에게 물을 길어다 주던 중 탄환에 맞아 허무하게 죽는다.
에필로그에 마치 회고하듯 등장하는 프란츠 군수와 황제의 죽음은 한 때의 영광이 모두 사라진 왕조와 가문의 쓸쓸한 최후를 지켜보는 듯하다. 결국에는 이렇게 모든 것이 죽음으로 소멸되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반복하는 것처럼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짚어 보게 된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 작품을 읽으며 꽤 지루하거나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제일 뒷부분에 등장하는 작품해설부터 한 번 읽어본 다음 소설을 읽어나가길 권한다. 큰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니므로 해설을 미리 읽는다고 해서 작품의 재미가 반감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두 달 쯤 후에는 도시마다 시립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가 개최될 텐데, 이때 앙코르 곡으로 “라데츠키 행진곡”이 흐른다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트로타 3대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 했던 이 운명의 전주곡을 어찌 잊겠는가. 이 책을 읽었다면 연주회장에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라데츠키 행진곡”을 꼭 들어보시길...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