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국의 소년 1 이정명 | 열림원 | 20130531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최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군 라오스 탈북 청소년 사건은 이들이 강제 북송 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목숨을 담보로 탈북을 감행했던 만큼 북송 후 그들에게 보복성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아닌지 국내는 물론 세계 인권단체에서도 관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북한에서는 북송된 청소년들을 앞세워 남측에서 유괴 납치하였다는 날조된 소식을 전하였고 아이들은 그들의 체제 선전 도구가 되어야 했다. 이런 때 읽어서 그런지 북한의 수학 천재 소년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다룬 이정명 작가의 신작 <천국의 소년 ; 바보라 불린 어느 천재 이야기>은 북한의 생활 속으로 뛰어든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끔 해 주었다.
이정명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고 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역시나 <뿌리 깊은 나무> 덕분이었다. 마방진이라는 수학 퍼즐을 단서로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을 파헤친 동시에 세종대왕과 한글창제의 비밀을 밝혀낸 이 역사 팩션은 내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못지않은 지적 스릴러의 재미를 안겨 주었었다. 이후 나온 <바람의 화원>에서도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당대 두 천재 화백의 관계를 새로운 시선을 풀어내고 또 그들의 작품들을 조명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악의 교전>이나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읽지 못했기에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이정명의 신작이 <천국의 소년>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특기라 할 수 있는 의문의 살인사건과 이 사건의 특별한 용의자를 첫 머리부터 등장시킴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의 한 주택에서 북한 출신의 50대 남성이 죽은 채 발견되고, 그 옆에는 죽음의 암호처럼 의문의 숫자와 그림 그리고 허벅지 총상을 입은 20대 남성이 있었다. 조사 결과 그는 놀랍게도 인터폴이 적색수배령을 내린 1급 범죄자 ‘안길모’였고, 목격자일 가능성은 배제된 채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받고 치료와 동시에 수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여 수사는 난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낮은 정신연령에 자폐 증상까지 보이지만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아스퍼거 신도롬’은 ‘서번트 신드롬’과도 매우 유사-이 두 증후군의 명확한 차이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하다. 길모가 재능을 보인 분야는 수학이었다. 숫자들로 세상과 소통을 하는 길모의 이런 특징을 간파한 간호사 안젤라는 길모의 방식에 맞춰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길모. 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어쩌다 길모가 인터폴의 1급 범죄자로 수배를 받게 되었는지 그 험난했던 여정을 생생히 담아 전한다. 북한에서 의사였던 아버지는 군의 고위 간부가 죽자 한순간에 장의사가 된다.
타인의 죽음을 배달하던 아버지는 길모가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평양 제1중학교에 입학시키고 그곳에서도 특출 났던 길모는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을 준비하며 생애 처음으로 친구도 만들고 잠시였지만 일상적인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성경책이 발각되면서 길모의 삶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과 아버지의 죽음, 강씨 아저씨와 그의 딸 영애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마는 길모의 인생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난파선 같았다. 영애와의 이별 후 그녀와의 재회를 꿈꾸며 수용소를 탈출해 꽃제비-떠돌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코체비예’에서 유래했다고 함-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용소 보다 나을 것 없이 매일 굶주림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살기 위해, 그리고 영애를 만나기 위해 탈북 하여 중국 옌지, 상하이, 마카오를 지나 서울로 온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서울에 와서도 길모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북한의 주체사상에 길들어 있는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그리고 계속된 그의 여정은 멕시코와 미국, 스위스 베른에까지 이른다. 이 과정에 길모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마약 밀매와 폭력조직 활동, 사기 도박과 밀입국, 살인 등 숱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국제적인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길모이지만 길모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숫자이고 수학이다. 어떻게 이런 계산식에 이런 답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싶은 것들과 또 이 수의 비밀을 처음으로 밝힌 사람의 이름을 딴 어려운 이론들도 등장하는데 <뿌리 깊은 나무>의 마방진처럼 이 수학이론들도 의미를 부여하여 곱씹어 보면 참 재밌다. “헤어진 것들은 다시 만난다.”는 의미를 담은 카프리카 수 ‘6048 1729’. 이 카프리카 수처럼 사람의 운명, 인연이란 것도 분명 존재하는 거겠지. 마지막에 이르러 길모는 안젤라에게 이 살인사건의 모든 것을 고백하고 또 안젤라는 길모에게 나이트 미처 씨의 비밀을 알려준다. 자유와 막대한 돈은 얻었을 지 몰라도 어쩌면 평생을 쫓기는 도망자 신세이고 더이상 돌아갈 곳도 없는 길모와 영애. 이 두 사람에게 세상 어디도 천국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둘이 함께 하는 동안 더이상의 고통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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