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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by 푸른바람꽃 2013. 7. 2.
너를 봤어 너를 봤어
김려령(Kim Ryeo-ryeong)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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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완득이"는 유아인과 김윤석 주연의 영화 <완득이> 뿐이다. 장기간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었던 김려령 작가의 소설 <완득이>는 아직 읽지 못했고 그녀의 <우아한 거짓말>이나 <가시고백>도 번번이 읽을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김려령이라는 작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 읽게 될 작가의 글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다음 작품도 청소년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번에 김려령 작가가 들고온 작품은 과감하게 19금 소설, 일반소설, 성인소설이라 부르는 <너를 봤어> 였다.

 

처음에는 책의 표지도, 그리고 의미심장한 책의 제목도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책의 중반 쯤 이르면 제목에서 말하는 2인칭 대명사 ‘너’가 사실은 누군가에게 목격된 ‘나’ 자신이기도 하고 또 내가 목격하는 타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에서 화자인 정수현은 제법 이름 있는 작가이자 출판사의 편집자이고 그녀의 아내 유지연 또한 유명세 있는 작가이다. 그러나 이 작가 부부의 관계는 남보다 못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유대관계도 없는 그야말로 쇼윈도 부부였다. 수현이 모처럼 어머니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자박자박 제 갈 길을 걸어간다.

 

전개부에서 드러난 정수현의 대인관계를 보자면 일단 아내는 함께 사는 동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어머니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뜯기던 아내는 급기야 남편에 대한 값은 더 이상 지불하기 싫으니 데려갈 테면 데려가라고 반품 의사를 표한다. 어머니는 식당을 빙자한 술집을 운영하며 늘상 아들네에 손을 벌리고 있었고, 처음부터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잠시 쉬는 피난처로 결혼을 선택한 수현 역시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서영재라는 후배 작가가 등장하면서 수현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불륜이라면 으레 죄책감도 가지고, 상대의 배우자에게 들킬까봐 주저하는 그런 분위기여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불륜이 오히려 더 당당해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아내가 수현에게 냉랭한 이유는 비단 아내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수현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의 애정행각은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책을 읽다 잠깐 되돌아가 다시 읽게 된 지점이 있었는데 바로 수현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부분이었다. 느닷없는 그녀의 죽음은 수현과 영재, 도하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까지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수현이 어린 시절 경험한 가정 폭력과 어머니의 부정(不淨)함, 아버지의 죽음과 또 형의 죽음 등 이 모든 것이 내가 목격한 혹은 내가 목격된 일들로 <너를 봤어>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있다. 살인을 하고도 어쩜 저렇게 멀쩡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의아한 점도 있다.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것도 잠시 그는 평소처럼 말간 얼굴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삶이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탱되긴 힘들다. 특히 소중한 것,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 이 모든 것들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문득 찾아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수현에 의해 다시 예기치 못한 폭력성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죽음 하나로 그가 지은 죄와 사랑이 모두 소멸될까? 정수현의 삶을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직업이 작가이고 또 출판계 종사자라서 작가의 자전적인 느낌도 많다. 김려령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작 중 서영재의 작업 방식이 자신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자유로를 달리는 차에 몸을 싣고 파주출판도시로 출근하는 미래를 꿈꾼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출판업계의 일에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보여진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도, 그 글을 찍어내는 사람도 녹록치 않은 일에 종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미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데 글을 빌려 목소리를 내고 있는 수현의 생의 마지막 에필로그가 짠하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