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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by 푸른바람꽃 2013. 7. 3.
추방 추방
박현주, 소피 옥사넨(Sofi Oksanen) | 은행나무 |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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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무모할 수 있을까? 그동안 영화, 드라마, 책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지독한 사랑들을 봐 왔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사랑의 대부분은 사회 통념적으로 금지된 사랑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흔한 경우는 불륜 또는 가족관계 내에서의 사랑이었다. 핀란드 작가 소피 옥사넨의 <추방> 또한 에스토니아라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나라를 배경으로 가족관계 속의 금지된 사랑과 그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우리 영화 <중독>이 떠오르기도 했던 <추방>은 형부를 사랑한 처제의 잔혹한 사랑이야기이자 소련과 독일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에스토니아의 슬픈 역사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에스토니아가 대체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조차 몰랐다. <추방>의 본문에서는 독일 옆에 있다고 작은 힌트를 주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독일과는 좀 떨어져 있고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의 아래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 사는 노파 알리데의 앞에 어느 날 낯선 여인 자라가 나타나 피신을 요청한다. 자라의 추레한 행색과 몰골은 알리데를 망설이게 했지만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던 알리데는 그녀를 집 안으로 들여 씻기고, 먹이고, 옷도 내어주며 자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알리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재 시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시점도 이어질 뿐만 아니라 1930년대 후반의 에스토니아로 돌아가 알리데의 과거를,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 직전까지의 자라의 과거도 보여준다.

 

젊은 날 알리데는 한 남자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그 남자 한스가 사랑한 이는 알리데의 언니 잉겔이었고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자신의 사랑을 감추는 것도, 그리고 언니와 형부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을 알리데의 심정은 이해되지만 언니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의 행복은 등한시 하는 알리데가 애처롭다. 가족이 된 후에도 알리데의 짝사랑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언니의 사랑을 파괴하고 그 사랑을 가로채는 잔인함마저 보인다. 한스가 반소비에트 민족주의자로 수배를 받자 알리데와 잉겔은 오로지 한스의 안전을 위해 심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끝까지 한스를 지킨 알리데의 다음 선택은 사랑 없는 결혼이었고, 언니와 조카 린다의 국외 추방이었다.

 

이후 알리데는 언니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 한스가 은닉하고 있던 언니의 집으로 남편 마르틴과 함께 돌아와 남편 몰래 한스를 다시 보살피기 시작한다. 총 5부로 구성된 각 챕터의 앞에는 알리데와 잉겔의 집에 숨어지낸 동아 쓴 한스의 일기가 등장한다. 마치 자신의 덫에 한스를 잡아 놓고 사육하는 듯한 알리데를 혐오하며 아내 잉겔과 딸 린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담아 놓은 한스의 글을 보면서 알리데의 이 집착이 얼마나 잔인한 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스 가족의 고통과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의문의 여인 자라가 그 증거였다. 돈을 벌어 의사라는 꿈을 이루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사기를 당해 마약과 성매매로 유린당하다 극적으로 탈출해 알리데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독자들은 일찌감치 알리데와 자라의 관계를 눈치챘겠지만 알리데는 책의 결말에 다다른 후에야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자라를 쫓던 자들로 부터 말이다. 잉겔과 린다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일생을 고독하게 살았던 알리데였지만 그녀는 한스의 손녀인 자라를 보호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잉겔에게 속죄하고 한스와의 사랑도 완성한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각자가 사랑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알리데의 사랑은 너무도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이기적인 사랑의 결말도 아름답다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모두의 운명까지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있다는데 국내에서는 "숙청"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과연 영화 속 알리데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