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페르노 세트 댄 브라운(Dan Brown), 안종설 | 문학수첩 | 20130704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인페르노>는 <다빈치 코드> 이후 실로 오랜만에 읽는 댄 브라운의 작품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들은 암호와 상징의 숨은 뜻을 파헤치면서 사건에 접근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다빈치 코드> 때만 하더라도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던 것이 이후 소재만 다를 뿐 그 패턴은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어서 나온 신간들은 완독을 하질 못했다. 그런데 한동안 새로운 책 소식이 없던 댄 브라운이 4년만에 <인페르노>로 돌아왔다니 이번에는 어떤 내용일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책 제목인 ‘인페르노’라는 단어만 보고도 이 책의 중심 소재를 짐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단테의 <신곡>을 아는 사람이리라. 나 같은 경우에는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가 책을 읽어 나가면서 비로소 단테의 성이 알리기에리라는 것과 그의 고향이 이탈리아 피렌체였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당한 후 죽을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대표작 <신곡>이 크게 [지옥], [연옥], [천국]까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중 지옥 편을 ‘인페르노’라고 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 지적 스릴러의 대가 댄 브라운답게 이 같은 단테와 그의 <신곡>에 얽힌 해박한 지식과 정보들은 오리무중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감없이 쏟아져 나온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이탈리아 피렌체의 낯선 병실에서 깨어난 로버트 랭던 교수는 며칠 간의 기억이 사라진 상태다. 왜 자신이 이곳에 누워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또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로버트는 자신을 돌보던 여의사 시에나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벗어난다. 이때부터 로버트와 시에나는 운명 공동체로 로버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함께 찾는 동시에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이 누구인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인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주요 사건들이 전개된다. 이곳은 단테의 고향일 뿐 아니라 보티첼리, 바사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카치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은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버트와 시에나가 사건의 첫 단서로 발견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라는 그림을 시작으로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베키오 궁전, 두오모, 산 조반니 세례당 등 유서 깊은 명소와 유물들이 차례로 소개되며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 단테 등을 속속 탐구할 수 있다. 이어 무대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등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등으로 옮겨가는데 이 두 도시에서도 그곳의 역사와 문화재의 얽힌 이야기는 계속된다.
중반 이후부터 드러난 사건의 주범과 전말은 인구 과잉으로 인하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 지구의 기후 변화 문제 등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처음에는 한 사이코 과학자의 궤변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기하급수적이란 말은 공포 그자체로 다가왔다. 또 수치 상으로 내다본 결과가 사실이라면 SF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미래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 과학자가 내놓은 해결책이란 것이 모두의 짐작과 달라서 반전이긴 하다. 하지만 결말에서 이 괴짜 과학자가 저지른 만행의 결과가 제대로 수습되지는 않고 사건의 전말만 드러난 후 이야기가 흐지부지 끝나버린게 아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본문에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다양한 풍경과 사물 등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 틈틈이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한 검색은 필수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긴 한데 이렇게 글을 읽으며 사진까지 동시에 보면 느낌은 배가 된다. 이런 점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섞인 팩션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싶고 댄 브라운의 소설은 특히나 그 재미를 더한다. 단테의 <신곡>에 대해 추가로 궁금한 것들이 있어서 내용을 찾다보니 이 작품이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 외에도 단테의 <신곡>이 나온 이후에야 이 책에 사용된 토스카나 방언을 중심으로 오늘날 표준 이탈리아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주석이나 해설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신곡> 읽기에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흥미롭고 위대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다."고 단테는 <신곡> 중 지옥편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 같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거냐고...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