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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by 푸른바람꽃 2013. 8. 11.
정글만리 세트 (전3권) 정글만리 세트 (전3권)
조정래 | 해냄출판사 |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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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라는 대학원생이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인식 설문 조사를 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질문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래서 향후 중국을 방문하고 싶은가? 앞서 중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들에 대한 내 대답은 부정적인 것들뿐이었다. 중국은 청결하지 못하다 했고, 가짜가 판을 치는 나라라서 믿을 수 없다 했다. 그래서 중국에 가지 않을 거냐고 묻는 마지막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적었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이 중국의 전부가 아님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조정래 작가가 그의 신작 <정글만리>로 보여 주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 그러나 시대는 변하였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도 아닌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국은 북한과 달리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화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자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무서운 속도로 세계 경제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함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나라를 의미하는 G2 국가로 거듭났다. 중국의 이 놀라운 위상 변화에 전 세계가 놀랐지만 특히 한국과 일본의 충격은 컸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국은 G2가 될 수 있었을까? <정글만리>는 자본주의 국가 보다 더 자본이 지배하는 중국의 모습, 그 중에서도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의 세계, 중국 시장에 불어 닥친 성형 열풍, 베이징대에 다니는 한국과 중국 청년들이 바라보는 중국 사회 등을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간과했던 중국을 일러준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이 전 3권에 걸쳐 진행되는 이야기는 몇몇의 중심인물들이 펼쳐가는 이야기가 그물처럼 얽혀서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룬다. 한국의 종합상사에서 중국 주재원으로 10년째 근무 중인 부장 전대광과 한국에서 의료사고를 낸 뒤 재기를 꿈꾸며 중국으로 온 성형외과의 서하원, 포스코의 중국 주재원에 있는 김현곤, 미모의 30대 여성으로 골드그룹 회장인 왕링링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 즉시 도태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각자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 등장하는 것이 중국의 ‘꽌(관시 ; 關係)’ 문화다. 뒷배 역할을 하는 인맥을 뜻하는데 전대광의 꽌시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중국 세관원에 있는 샹신원이다.

 

무역업을 하는 전대광이나 샹신원의 요청으로 중국에 올 수 있었던 서하원, 철강 수주를 따내야 하는 김현곤, 수입한 철강으로 건물을 세우는 왕링링 모두 샹신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들이다. 이 와중에 한국, 일본의 비즈니스 경쟁이 벌어지고 여기서 승패는 품질이나 가격경쟁력이 아닌 샹신원처럼 권력을 가졌거나 왕링링처럼 재력은 가진 자들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처럼 중국 고위 관리의 부정부패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꽌시 외에도 중국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멘쯔(체면)를 중시하는 문화라든지 숭녀공처 의식, 얼나이(축첩) 문화, 남아선호사상과 계획생육(산아제한)으로 인한 문제, 신분과 재력에 대한 남다른 과시욕 등이 그것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정글만리 2P.348)”는 말 또한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말이다. 공안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중국에서 애당초 문제의 소지가 될 법한 말과 행동 특히 대만 독립과 같은 무척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견의 피력을 삼가야 하며 혹여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생겼다면 그 즉시 꽌시와 돈으로 중국이 문제 삼지 않도록 막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중국 사회는 같은 동양권이라 비슷한 점도 많은 반면 그들만의 정서랄까 특이한 문화도 꽤 많다. 묘한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인데 역사적으로 얽히고설켜 그 감정의 뿌리가 깊다보니 묘하게 서로를 깔보며 적대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이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고 때로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결과적으로 상호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작가는 베이징대학교에 다니는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과 중국의 거부 리완싱의 딸인 리옌링이 서로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딸이 한국 청년과 사귄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발대발하던 리완싱이 송재형을 직접 만나본 후에는 호감을 느끼게 되는 설정은 양국이 해묵은 감정을 버리고 공존하는 미래를 그린 것이리라.

 

이 같은 중심인물들의 이야기 외에도 <정글만리>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하경만 사장의 중국 성공담이었다. 변변한 꽌시도 없고 재력도 없던 그가 중국 땅에서 액세서리 사업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중국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전략은 중국이 아닌 세계 어디에서라도 통하는 방법일 것이다. 기업의 최대 목적은 이윤추구라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지역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지역민들과 다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하경만 사장은 중국에서 성공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돈을 향한 열정과 야망, 치열한 중국에서의 생존 경쟁이 꼭 정글과 같다.

그리고 중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을 합해 <정글만리>라는 제목을 붙였다.”

 

 

조정래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책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 중에서 중국 시장 내에서의 경쟁보다 더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이었다. 잊을 만하면 중국이 G2 국가가 되었고 IMF의 전망에 따르면 3년 이내에 미국을 제치고 G1이 된다는 전망이 거듭 강조되고 있어 진짜 정글은 글로벌 시장이 아닌가 싶다. 그 속에는 대한민국도 있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이미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뒤늦게 출발했지만 가장 빠른 속도록 치고 올라온 중국이 세계 각국의 위협이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중국에게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시장마저 내어주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정글만리>는 묻고 있다. 중국의 뒤만 쫓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앞으로 다시 뛰어 나갈 것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열쇠가 될 것이며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는 그러한 점에서 더욱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