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양이 앉는 자리 츠지무라 미즈키, 김선영 | 문학사상사 | 20131112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어제 우연히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고교 동창인 여자 아이가 화면에 비췄다. 이제 충무로의 멜로 여왕으로 소개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예전에는 왜 그렇게 그녀를 인정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는 오가며 몇 번이나 마주쳤을까,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그녀가 도마 위에 오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그녀를 평가절하 하곤 했었다. 여자애들의 질투고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 중에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고교 동창이라며 스스로 실토하곤 했다. 그런데 이 미묘했던 나의 심리를 파헤쳐 주는 것 같았던 책 <태양이 앉는 자리>를 만나고 뭔가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열쇠 없는 꿈을 꾸다>, <물밑 페스티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츠나구>의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인 이 책은 고교 동창들의 반창회로 시작된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것도 잠시, 그들의 대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여배우로 성장한 스즈하라 교코. 비록 반창회에는 계속 참석하지 않고 있지만 누가 봐도 이 반창회의 주인공은 그녀 같아 보였다. 급기야 다음 반창회 때는 어떻게 해서든 교코를 불러내기로 친구들은 합의한다. 그리고 이 임무는 사토미에게 떠맡겨진다. 친구들은 모르지만 사토미 역시 연기자의 꿈을 키우며 연극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에게 쿄코와의 만남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처지와 그녀를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들 입으로는 교코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이 반창회에서 교코와의 재회가 은근히 긴장되던 사람은 사토미만이 아니었다. 책의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로 서로 얽힌 친구들이 이 그룹 속에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스릴러라 할 만한 내용은 바로 이 사건이다. 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이며 목격자 인지는 책의 후반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애초에 짐작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호들갑 떨만한 사건도 아니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했다. 그리고 남녀공학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겪는 갈등으로 빼놓을 수 없는 서로의 애정문제가 이 책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게다가 학우들에게 관심을 독차지 하면서 인기 있는 친구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괜실히 친구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교시절 누구나 한 번쯤을 경험해 봤을 10대 청소년들의 풋내 나는 감정들을 츠지무라 미즈키는 섬세하게 그려 보인다. 그녀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유독 성장기의 청소년들 심리를 잘 다뤘는데 그녀의 특기가 이 작품에서도 잘 발휘되어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작품의 단점이라면 프롤로그에서 언급되었던 그 사건, 그것이 그다지 강렬하지가 못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스토리에서 큰 매력은 느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그려나가는 형식이라서 옴니버스 소설 같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유부남 동창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고, 또 가장 친한 친구라는 허울 속에 속으로는 그 친구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며, 예전부터 계속된 짝사랑에 혼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는 친구가 혹시라도 비밀을 폭로할까봐 불안에 떨기도 한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고교 시절 그 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고등학생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 묘하게 겹쳐진다.
태양은 그곳이 어디에 있든 뜨겁고 빛난다. 이 책에서 결국 이야기 하려던 바는 우리 모두가 찬란한 태양이라는 게 아닐까 싶다. 다들 스타가 된 쿄코를 밝게 빛나는 태양으로 느끼며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용서와 이해만이 과거의 단단한 매듭을 풀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말해 준다. 그리고 알고 보면 서로가 짐작만으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터놓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끝내 그것은 오해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교롭게도 연예인을 고교 동창으로 두었다는 설정이나 학창시절 친구에게 느낄 수 있는 질투의 감정, 그리고 겉으로는 누구보다 친하다고 생각해도 속으로는 그 친구에게 차마 할 수 없었던 속마음 등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최고는 <츠나구>다. 하지만 <태양이 앉는 자리> 또한 그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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