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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by 푸른바람꽃 2014. 1. 27.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이윤 | 호미하우스 |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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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터넷을 하다 보니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로 체르노빌’, ‘체르노빌 다이어리등이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었다. 19864월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에 관한 어떤 연구 보고서라도 나온 건가 싶어 찾아봤더니 방사능 공포를 다룬 스릴러 영화 제목이 체르노빌 다이어리였다. 체르노빌 사건은 그야말로 도시를 멸망 수준으로 몰아넣었고 그 피해는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엊그제 일처럼 자꾸 회자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에 읽은 시마다 소지의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도 원전 사고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티 소설 중에서도 사회파, 본격 미스터리는 사건의 추리와 함께 독자에게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의 무게감이 있어 좋다.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는 내게 낯설지만 그가 쓴 이 장르 소설은 제목부터 충분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읽기 전까지는 어떤 의문의 살인사건이 내용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 보다는 그 사건 이면에 아니 그 사건과 이어져 있는 줄을 잡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건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안개 자욱한 밤 담뱃가게의 노파가 둔기로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되고 이날 고글을 쓴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남자가 목격된다. 그런데 고글을 쓴 인상착의도 괴이했지만 그를 무심코 목격한 순경의 증언으로는 그가 쓴 고글의 주변은 피부가 벗겨져 근육이 드러난 것만 같았고 렌즈인지 눈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건 현장의 단서라고 해 봐야 필터가 없는 담배 50개비와 노란색 마카펜 선이 들어간 5천 엔짜리 지폐가 전부였다.

 

앞선 살인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때쯤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남자인 ‘라는 인물이 중학생 때 당했던 고통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시작되는데 그는 일명 유령의 숲이라고 불린 타루미 강 주변의 숲에서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안개 자욱한 밤 고글을 쓴 채로. 이쯤 되면 어쩐지 노파 살인사건과 가 전혀 무관하진 않다는 점을 쉽사리 눈치 채게 된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렇게 금세 범인을 공개했을 리 없고, 더군다나 는 마치 다중인격처럼 어느 순간에는 각성 상태의 일도 기억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사라지는 일은 반복되고 주변에서는 고글 쓴 남자의 목격담 제보가 이어진다. 범인은 정말 그가 맞는지 계속된 의심 속에 가 일하는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의 임계 사건과 를 망가뜨린 나츠메다, 이 밖에도 츠다, 미츠코, 미나모토 등이 사건에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 지고 한 권의 책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얽혀 나간다.

 

사건의 진상을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모든 진실들이 그러하듯 이 책에서의 진실도 매우 단순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시마다 소지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갖가지 장치를 해 두었다. 가령 의 기억상실과 몸의 흔적들이나 그의 과거, 츠다와 미츠코, 미나모토, 나츠메다의 관계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것을 정리해 주는 범인의 자백이 연이은 살인사건의 전말을 모두 말해주고 있어서 매우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다만 라는 존재는 여전히 모두의 의문에 휩싸인 채 남았지만.

 

끝으로 방사능 피폭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작가가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 시사 프로그램에서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현장 수습 중인 일용직 근로자들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피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미 피폭된 그들에게 의료지원이나 복지혜택은 전무하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일하는건 피폭의 공포보다 당장의 실직이 더 두렵다고 했다. 그 말이 인상깊었는데 라는 인물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더욱 깊게 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와 연속하여 읽으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작품해설에도 나오듯 스토리의 힘이었다. 이 작품에는 그것이 있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