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우타노 쇼고(Shougo Utano), 민경욱 | 블루엘리펀트 | 2014012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스스로 납치를 당하고 싶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우타노 쇼고의 1991년 출간작이라고 한다. 벌써 2014년이 되었으니 13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고 책에서는 90년대에서나 등장할 법한 카폰이나 음성사서함, 전화대화방 등이 등장해 현대작과는 또 다른 신선한 맛이 있다. 사건의 시작은 아내를 납치했다는 범인의 협박 전화부터였다. 젊은 사업가 다카유키의 아내 사오리를 납치했다는 범인은 꽤나 치밀한 방식으로 다카유키를 협박하며 돈을 요구한다. 경찰의 개입 없이 혼자 순순히 요구에 응한다면 아내를 돌려 보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카유키는 경찰과 남동생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과정 중에 돌발 상황도 생겼지만 범인은 어쨌든 목적한 바를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내 사오리가 돌아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돌연 화자의 시점을 1인칭으로 바꿔 사건이 발생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바로 납치된 주인공 사오리가 나타나 이 납치극의 전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미모의 여성 사오리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구로다를 찾아와 본인의 납치극을 의뢰한다.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다는 이유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꾸민다는게 납득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납치를 원했다는 설정이 독특하긴 하다. 예전에 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등장인물의 대사 중에 납치에는 착한 납치가 있고 나쁜 납치가 있다고 하더니 이 책에서의 납치는 둘 중에 전자에 해당됐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이 생기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여자는 사랑을 확인하며, 아내를 되찾고 싶은 남자에게는 아내가 돌아오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다. 착한 납치극으로 끝났어야 할 이 사건이 불현듯 사오리의 살인 및 시체 유기 사건으로 바뀐다. 한 권의 책에 전혀 다른 두 사건이 이렇게 교묘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다니 이 점은 무척 흥미로웠다. 자작 납치극의 공범이었던 구로다는 한 순간에 사오리 살인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버렸고, 그 자신마저 사오리를 살해한 범인으로부터 협박을 받기에 이른다. 대체 사오리는 어쩌다 죽음에 이른 것이며, 사오리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 것일까? 이런 사건들이 대게 그렇듯이 의심스런 사람은 있지만 범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범행 방식에 있었다.
허를 찌르는 반전까지는 아니어도 이 책에서 등장하는 트릭들은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무엇보다 구로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면 이 책은 무척이나 밋밋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돈에 눈이 먼 평범한 심부름센터 사장이었는데 나중에는 사건의 진범을 쫓는 기민함도 보인다. 그래도 사오리에게 범한 짓만큼은 아무리 별 수 없는 상황이라해도 도저히 구로다라는 인물에게 정은 가지 않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진실의 한꺼풀만 벗겨지자 사건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어 나가고, 마지막에는 친절하게 범인의 입으로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진다. 책의 서사 과정이나 구성 등이 영상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재밌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작품이라 세련미는 떨어지겠지만 찾아보고 싶긴 하다. 그리고 우타노 쇼로의 국내 유명작 <벚꽃 지는 계절에 너를 그리워 하네>라는 제법 시적인 제목의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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