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4031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여중과 여고를 나와선지 남녀공학에 대한 묘한 환상이 있다. 그 환상을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이야기가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다. 아직은 대형 출판단지도, 유명 쇼핑몰도 들어서지 않았던 경기도 파주에서 2번 버스로 맺어진 ‘나’와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은 각자 반은 달라도 함께 어울리는 사이였다. 서로의 이름이 다르듯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달랐지만 그래도 그들은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현재의 ‘나’의 카메라에 현재의 친구들이 하나 둘 담긴다. 그리고 나의 기억을 쫓아 시간은 무심히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나’에게 인도에서 이사 온 하 씨 남매의 등장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가 하주연의 집으로 놀러갔다가 마주친 하주완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녀도 여느 소녀들처럼 첫 사랑을 시작한다. ‘하주’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나’에게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영화 미술과 소품을 담당하는데 그녀의 지금은 이렇듯 ‘하주’가 들여보내준 세계에서 시작됐다.
이야기는 ‘나’와 ‘하주’가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과정과 ‘나’의 친구들인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의 이야기가 변주되어 얽혀 나간다. 이 가운데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켜보는 외사랑 수미가 있고, 이를 알면서도 태연하게 친구로만 수미를 대하는 민웅이 있다. 학급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던 송이도 있고, 늘 사건에서 한 걸음 정도는 떨어져 있는 것 같던 주연과 그 와중에 1등을 놓치지 않던 찬겸도 있다. 아슬아슬하면서도 끈끈해 보이던 아이들의 관계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민웅과 수미 사이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부터였다. 그럴수록 점점 더 깊어져 가는 ‘나’와 ‘하주’의 관계도 이유 없이 불안해 보였다.
책의 뒷 표지에 남겨져 있는 심사평에서 이미 누군가의 죽음은 예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 다만 갑작스런 전개에 주인공인 ‘나’만큼이나 독자들도 당황스럽고 안타깝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누군가를 원망할 곳도 없던 ‘나’ 스스로를 놓아 버린다. 그런 ‘나’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녀의 곁은 지켜주었다. 그 따뜻한 온기가 페이지마다 느껴졌다는 점이 슬픈 이야기를 슬프지만은 않게 그려보였다는 점이 <이만큼 가까이>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9번이나 각종 문학상 최종심에 고배를 마셨던 정세랑 작가가 포기 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창비 문학상의 일곱 번째 주인공이 되어 그녀의 책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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