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 리안 모리아티(Liane Moriarty), 김소정 | 마시멜로 | 20170703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잠시 정신을 잃고 깨어났는데 지난 10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기억을 잃은 앨리스가 10년 사이 너무도 달라진 자신의 상황과 가족간의 관계 등을 개선해 나가는 내용이다. 운동을 하다가 쓰러진 앨리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이 첫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10년 전 ‘건포도’라는 태명을 가진 첫 아이를 순산했고, 그 후로도 아들과 딸을 더 낳았다. 그런데도 이 모든 기억이 없는 그녀는 현재가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더욱이 달라진 건 그녀의 출산과 자녀뿐만이 아니었다. 사랑했던 남편은 그녀를 냉랭하게 대할 뿐이고, 그녀의 언니 역시 앨리스와 어색하다 못해 껄끄러워하는 분위기다. 자신의 겉모습은 훨씬 매력적으로 변해 있었지만, 왜 가족들은 그녀와 더 멀어져 버린 것일까. 앨리스의 기억 찾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와도 집은 낯설고 아이들의 얼굴은 난생 처음 보는 꼬마들 같다. 10대 소녀인 맏이는 사춘기의 반항적 기질을 마음껏 드러내고 둘째 아들과 막내 딸은 임신을 한 기억조차도 없는데 자신이 낳았단다. 그래도 앨리스는 이 모든 상황들을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이고 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 닉이 분명 그녀를 도와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닉과는 이혼을 진행 중이었고, 그녀는 기억이 없은지 모르지만 닉에게는 그녀와의 불행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쯤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어쩌다가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리고 가는 곳마다 등장하는 이웃집 여자 지나의 죽음이 앨리스의 가족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이다.
책에서는 그 과정을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고 퍼즐의 조각을 끼워 맞추듯 하나씩 흩어진 조각들을 찾아다 제자리에 넣는다. 그 과정이 단순히 앨리스의 입장에서만 그려지지 않고 언니 엘리자베스의 글과 교차하여 진행됨으로 더욱 흥미롭다. 앨리스는 알지 못했지만 엘리자베스가 느꼈을 그 순간의 감정들은 엘리자베스의 글에 훨씬 잘 녹아 있었고, 또 자매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 원인도 서서히 의문이 풀린다. 10년이란 시간동안 앨리스가 변하게 된 원인도 물론 있었다. 점점 워커홀릭이 되어 버리는 닉과 그럼으로 인해 혼자서 육아를 떠맏게 된 앨리스의 고충과 외로움, 그러다 사귀게 된 친구 지나의 영향 등 일련의 일들은 앨리스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기억을 되찾아가는 앨리스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그제야 그들이 놓치고 살아온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이런 모습들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결말은 예상 가능했지만 직전까지도 작가는 독자를 안심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반전 같았던 결말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기억 상실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를 끌고 왔지만 결혼한 여성들이 갖게되는 고민과 권태 등을 현실감 있게 잘 녹여냈고, 그런 것들마저도 지나고 나면 모두 소중한 삶의 기억이고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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