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40627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없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투명인간이라 한다. 과학에서 투명인간의 존재를 부정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엄연히 투명인간이 있다. 성석제 작가의 신작 <투명인간>은 아마도 현실에서의 이 '투명인간'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성석제 작가의 책을 그간 몇 번인가 읽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읽지 못했고, 그 책들은 지금도 내 방 책꽂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소설이 처음 읽는 그의 작품이 되었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투명인간>은 한강의 다리 위에서 투명인간이라 주장하는 한 사람이 또 다른 투명인간 '만수'를 목격하면서 시작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만수'의 출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단했던 그의 삶을 묵묵히 조명하면서 진행된다.
6남매 중에 둘째로 태어난 만수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외모나 공부머리가 어딘지 모자란 듯 했다. 하지만 순박했고, 우직했다. 성장하면서도 만수의 이런 기질은 그를 형제들보다 좀 뒤쳐지게 했을지는 몰라도 누구보다 형제들을 끔찍이 아끼며 서울로 상경 후에는 부모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특별했던 것은 이러한 만수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에 있었다. 책의 주인공은 만수이지만 그의 인생은 만수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묘사로 그려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형 백수, 누나 금희, 동생 명희, 석수, 옥희, 직장 동료 등에 이르는 만수와 관계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만수가 어떤 사람인지 독자들은 전해 듣는다.
책을 읽는 동안 어쩜 이렇듯 기구한 삶이 다 있을까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모두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대라 할지라도 만수에게 힘들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고, 한 고개를 넘었다 싶으면 또 만수를 무릎 꿇게 만드는 모진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불행이 과연 끝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끝까지 식구들과 동료들을 다독이던 만수가 애처로웠다. 누가 보면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지 몰라도 만수에게는 그것이 할아버지에게 배운 사람 된 도리였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사람 된 도리를 지키는 사람의 편이었던가. 오히려 그렇게 원칙을 지키며 착하게 사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되고 말았고, 만수처럼 부지런히 몸이 부서져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해피엔딩은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렇다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꾸만 벼랑 끝으로 만수를 몰아가는 작가가 야속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이르면 작가는 독자들을 다시 한강의 다리 위로 불러 세운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 서 있는 만수를 만나게 한다. 너무도 지쳐서 바람에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만수를 말이다. 결말을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 상황들은 조금씩 달랐다. 아마 성석제 작가는 끝까지 독자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만수랑 대화를 나눴던 다리 위의 그 남자는 내가 짐작하는 그가 맞을까? 만수는 이제 좀 편안해 졌을까? 다른 가족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투명인간이었다고 하기에는 모두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한 남자의 삶이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다. 책은 끝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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