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시간 김경인, 다나베 세이코(TANABE Seiko) | 북스토리 | 2014072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의 모임은 각자의 결혼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리가 되었다. 결혼은 연애가 아닌 생활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얘기하는데 생활이라는 이야기를 파고들어보면 결국 연애할 때의 환상이 점차 사라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환상이 사라지는 이유에는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서로가 몰라도 될 법한 것들, 다시 말해 사적인 부분들이 너무 많이 공개되어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 <아주 사적인 시간>은 결혼하지 이제 3년째를 맞은 ‘노리코’와 ‘나카야 고’의 신혼 생활을 들여다본다. 두 살 연하의 재벌 2세 고와 결혼한 노리코는 결혼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언제부턴가 고의 언행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노리코의 말을 빌리자면 고를 향했던 무의식의 보호본능이 해제되는 순간 짧은 결혼 생활도 서서히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노리코의 눈에 마흔일곱의 중년남자 나카스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열렬히 사랑했고, 사랑한 만큼 소유하고 싶었던 남자와 결혼까지 한 노리코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랑이란 게 이렇게 허약하고 쉽게 변질되는 것인지, 그리고 언제부턴가 작은 맨션에서 혼자서도 즐겁고 자유롭게 살았던 3년 전을 그리워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고에게 맞춰주는 연극따위 그만 하고 싶어졌다. 결혼에서 다툼이 없을 수는 없을 테고,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맞춰주는 어느 한쪽의 양보가 절실하다. 그것은 나를 감추는 가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멈추면 싸움은 커져만 간다.
결혼이 나 자신을 버려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 거기서 느끼는 행복이란 언젠가는 끝나는 시한부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노리코는 풍요와 안정을 버리고, 다시금 자유를 선택하며 노리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결혼한 여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공감하는 한편 이것은 확실히 픽션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리코가 행복감을 느끼며 마음껏 웃는 삶을 원한다면 그녀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 ‘노리코’는 다나베 세이코 소설 <딸기를 으깨며>나 <노리코, 연애하다>에도 등장한다. 시점 상 싱글인 노리코, 결혼한 노리코, 이혼한 노리코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사적인 시간>은 과거 출간된 바 있는 책인데 이번에 북스토리에서 재출간하면서 고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바로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고의 말투를 우리의 경상도 사투리 비슷하게 번역해 놓은 것이다. 원작에서도 고의 말투가 이런 느낌인지 몰라도 책에서 묘사된 젊고 매력적인 남자 고가 난데없이 이런 사투리를 사용하니 뭔가 어색한 감이 있었다. 오히려 표준어를 쓰는 고가 더 낫지 않았을까? 다나베 세이코의 담백한 다른 연애 소설들은 다른 번역본으로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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