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Isaka Kotaro), 김소영 | 웅진지식하우스 | 20140728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모던 타임즈>란 책으로 이사카 코타로를 처음 알게 된 이후 내가 꼽는 그의 최고 작품인 <골든 슬럼버>를 비롯해 이사카 코타로의 몇몇 작품과 또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챙겨보며 나는 이사카 월드에 입성했다. 그의 모든 작품이 좋았던 것은 아닌데 이사카 코타로의 책은 분명히 그만의 색깔이랄까,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한동안 그의 신작 소식도 듣지 못했고, 그렇게 이사카 코타로를 잊어갈 때쯤 <사신의 7일>이 나타났다. <사신치바>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사신치바>처럼 연작 단편 소설이 아닌 장편소설이었고, 치바가 새로운 조사 작업을 펼친 7일간의 기록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를 입에 달고 다니는 치바이지만 이번에 치바가 조사를 맡은 인물은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30대 작가로 활동중인 '야마노베 료'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는 하나뿐인 딸 '나쓰미'를 사이코패스 살인마 '혼조'의 손에 무참히 잃고 아내 '미키'와 함께 은둔 생활을 하면서 복수의 날만 손꼽아 기다려온 남자였다. 때마침 기소되었던 '혼조'가 뒤늦게 나타난 증거들로 무죄 석방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된 날 그의 심경을 취재하려고 몰려든 기자들 틈 속에 '치바'가 유치원 동창이라며 야마노베의 집을 방문하면서 치바의 조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중에서 공교롭게도 <사신치바>는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읽어보진 못한 작품이라 <사신의 7일>에서 나는 치바를 처음 만났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마다 특색 있는 인물이 한두 명은 꼭 등장하는데 치바 역시 범상치 않는 저승사자였다. 인간들의 삶을 가까이 지켜봐 온 그였지만 결코 인간은 아니기에 난데없이 드러나는 그의 사람 같지 않은 언행들이 야마노베와 미키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까지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세월의 개념도 없어 몇 백 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 보고 겪은 사람처럼 말하는가 하면, 그만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야마노베와 미키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는데 이런 점들이 치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 않나 싶다.
혼조의 무죄는 야마노베와 미키가 바라던 바였다. 상식적으로는 죽어 마땅한 범인이 무죄로 석방된다는 소식에 통탄하고 분개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야마노베 부부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다 못해 혼조 무죄 석방에 기여까지 했다. 바로 그들 부부의 손으로 직접 혼조를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딸이 당한 고통보다 몇 배는 더 괴롭게 그를 처단하고, 가장 소중한 딸을 잃고 자신들이 살아온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혼조 또한 밀어 넣고 싶었으리라. 반성의 기미는커녕 자식을 잃은 부모를 조롱하기까지 하는 범인을 두고 어떤 아량이나 용서도 베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가 이렇게 복수를 준비하는 동안 혼조라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치 게임을 즐기 듯 혼조는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 계획에 번번이 찬물을 끼얹고 이들을 위기에 빠트린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재밌는 설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신이 야마노베를 찾아온 것과 같이 혼조에게도 사신 가가와가 찾아간다는 점이다. 서로를 죽이려는 두 남자 모두에게 사신은 다가왔고, 이제 누가 먼저 죽느냐 그것이 관건인데 야마노베와 혼조 모두 자신들의 죽음은 알지 못하기에 마치 낭떠러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달리기 선수들 같았다. 어쨌건 치바는 야마노베의 수명을 결정하러 왔고, 책에서는 일찌감치 치바의 결심을 밝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말고 함께 말이다. 이렇다 보니 부부의 복수는 과연 성공을 거두게 될지, 혼조의 수명은 어떻게 결정이 될지 그의 최후를 지켜보는 것이 이 책을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책에서는 야마노베와 치바 각자가 서술자로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유독 야마노베 아버지와의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일중독 가장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던 야마노베,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억들이 야마노베에게는 상처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그 때를 생각하며 아버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죽음이 가장 무서운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 결코 무서운 게 아님을 가르쳐 주려 했던 아버지를 말이다.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가 어설퍼서 사건 자체의 치밀함은 부족했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극적인 장치들 그러니깐 세부적인 설정들은 반전을 좋아하는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 마지않았던 야마노베와 혼조의 결말도 실망스럽지 않아 좋았다.
사춘기 때는 꽤나 자주,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은 죽음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 속에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나선 방 안을 서성이며 의미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는 식으로 감각들을 깨운다. 내 나름의 죽음 공포 퇴치법인데 이렇게 하면 잠시 후 마음이 다소 진정되면서 다시 잠을 청할 수 있게 됐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공포를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24시간 죽음만을 생각한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시간은 각자 사는 일에 골몰하여 죽음을 저만치 먼 미래의 일로만 믿기에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가 됐든 사신이 내 곁에 다가와 그가 죽음이 두렵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야마노베처럼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만큼은 정말 자신이 없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