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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미스터 찹 ; 전아리 장편소설

by 푸른바람꽃 2014. 8. 27.
헬로, 미스터 찹 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 나무옆의자 | 201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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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이제 막 어른으로 공식 데뷔하고, 대학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무렵을 떠올려 보면 나는 참 재미없게 살았었다. 시간표에 짜맞춘 고교 시절을 답습하듯 1학기 수강 신청 때는 뭣도 모르고 주5일 등교에 1교시마다 강의를 넣어 고생했고, 남들이 동아리 활동에 열을 올릴 때 선배들의 술 권하는 뒤풀이가 무서워 동아리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은 덕분에 선배도 후배도 없었다. 집, 학교, 도서관을 순회하며 꽃다운 스무 살을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학 생활까지 변변한 추억 하나 없이 그렇게 보낸 게 지금 와서는 큰 후회로 남는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해도 되는 자유를 왜 미처 몰랐을까. 전아리 작가의 신작 소설 <헬로, 미스터 찹>을 읽으면서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 살의 정우-여자 작가가 쓴 글이니 주인공도 여자일거라 짐작했으나 정우는 남자임-는 대학 새내기. 그러나 유일한 가족이던 엄마가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는 혼자가 되었다. 물론 외할머니도 있고, 외삼촌도 있지만 미혼모였던 엄마는 정우를 홀로 키우며 살아왔고, 그래서 정우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엄마가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하자 그는 빈 집에서 엄마가 쓰던 로션의 향기를 맡고, 엄마가 담근 김치를 아끼며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정우에게로 '찹'이 왔다.

 

5월부터 12월까지 정우가 쓴 일기 형식인 이 책은 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유머 덕분에 무척 재밌게, 그리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난데없이 찹이 등장하면서부터 잠시 장르가 ‘판타지’인지 의심했지만, 읽어보면 평범한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정막 같던 집에 찹과 애완견 숍에서 구입해온 강아지 한 마리가 가족으로 더해지자 온기가 감돈다. 그리고 정우와 절친 윤식의 연애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다양해지고, 여행을 떠난 외삼촌의 귀환과 존재조차 없던 생부의 등장,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체리 등으로 어느새 엄마의 빈자리도 차츰 채워져 나가는 느낌이다.

 

엄마와의 이별은 찹과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었고, 정우가 갈팡질팡 헤매거나 고민에 빠져있을 때 찹은 무심한 말일지언정 위로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 찹은 철딱서니 없는 말썽꾸러기 그 자체였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정우의 엄마나 친구가 되어줬다. 그래서 찹이라는 존재는 정우 엄마가 보내준 정령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이 몹시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었겠지만 정우는 찹 덕분인지 그 또래의 친구들과 같은 일상으로 금세 복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아리 작가는 지난번 소설 <앤>에서 한 차례 변화를 시도한 바 있는데, 그 때의 작품보다는 개인적으로 그녀만의 유쾌하고 명랑한 청춘 소설들을 나는 더 좋아한다. <헬로, 미스터 찹>에도 전아리 작가의 재기 넘치는 유머가 가득해 재밌게 읽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