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길리언 플린(Gillian Flynn), 문은실 | 푸른숲 | 20140826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가끔 TV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한 경우는 피부병으로 아픈 아이를 엄마라는 사람이 의료 기술을 믿지 못해 본인이 직접 치료한답시고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아동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일주일 정도 꾸준히 약물 복용만 했더라도 살 수 있는 피부병이었다는데 아이는 피부가 짓무르고 염증이 생겨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렀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대학 때 아동학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부모자격 검증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몸을 긋는 소녀>에 등장하는 ‘아도라’나 그녀의 모친 조야도 부모가 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의 그릇된 양육이 결국은 비극을 낳았다.
<나를 찾아줘>라는 작품으로 알게 된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인 <몸을 긋는 소녀>는 윈드 갭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두 소녀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이자 이 마을 출신인 카밀 프리커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나간다.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앤과 내털리 살인 사건은 윈드 갭을 충격에 빠트렸지만 도시 사람들은 이런 작은 마을의 살인 사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서 그저 그런 신문사 취재 기자로 있는 카밀의 상사의 눈에는 도시에서 똑같은 사건으로 경쟁하기보다 이런 사건이 독자들의 관심을 더욱 끌어당기리라 생각하고 카밀을 다시 고향으로 보냈다.
사실 카밀에게 윈드 갭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자 장소였다. 그것은 어머니 아도라와 관계가 깊었다. 책에서는 아도라와 카밀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긋났는지 보여주는 대신 열세살의 이부동생 앰마를 통해 이 가정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카밀의 죽은 동생 메리언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운 집에서 아도라가 벌이는 기이한 행동도 앤과 내털리라는 소녀들의 죽음과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책에서 카밀은 소녀들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형사 못지않게 취재를 빌미로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밀은 자신의 상처를 추스르기에도 무척 버거워 보였다. 메리언의 죽음이 아직도 상처로 남은데다 어머니 아도라의 범상치 않은 행동들, 그리고 막무가내로 엇나가는 여동생 앰마의 비행에다 카밀 자신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자해하는 습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과연 이런 카밀이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진실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어쩌면 마지막에 이르러 모두가 짐작해 마지않던 사람이 범인으로 잡히자 싱겁게 사건이 끝나버린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길리언 플린도 마지막 쪽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진짜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충격에 빠트린다. 여기서 충격은 범인의 정체 자체였다고 하기 보다는 그 범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 잔인한 행각들이 진짜 충격적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읽으면서 사람의 고장 난 정신세계는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으며,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을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나를 찾아줘>에 이어 이 작품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데 선뜻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앞서 <나를 찾아줘>를 읽었을 때도 결말이 충격적 반전이면서도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 싶었는데 이 책도 결말을 읽고 난 기분은 비슷하다. 현실이라고 해도 너무 잔인한 현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가 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