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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by 푸른바람꽃 2014. 11. 1.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문지혁 | 쉼 |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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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반드시 가야할 일이 아닌 바에야, 그리고 그 반드시 가야할 일마저도 피하고 싶어질 만큼 나는 일본이 방사능 사고 이후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결국 일본 방사능 이후 쏟아져 나온 온갖 진실과 거짓 속에 무엇을 믿어야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 마당에 무지를 선택한 셈이다. 따라서 일본에 발을 딛지 않겠다는 결심이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을 다시 갈 일 없는 나라로 저만치 밀어낸 후 가장 안타깝고 아쉬움이 컸던 사람은 바로나 자신이었다.

 

민족 간의 묵은 감정은 접어두고 일본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나 우리와 비슷한 외모에 꽤나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이 낯설지 않은 나라를 나는 딱 한 번 다녀왔는데, 그 때의 그 좋은 느낌이 평생 잊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일본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이 참 많다. 이제는 진작 좀 다녀올 걸 하며 후회해도 소용없고, 그래서 소심하게 나는 책으로 일본을 여행한다. 결코 채워지질 않을 허기를 달래듯이.

 

이번에 만난 곳은 꿈에서나 그려본 홋카이도의 오타루, 삿포로, 하코다테였다. 수집하다시피 모으는 가치창조의 In The Blue 열일곱 번째 이야기이고 제목은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이곳을 다녀온 여행자는 문지혁이었다. 그와는 동 출판사의 <이야기가 번지는 곳 뉴욕>으로 이미 일면식이 있었는데, 어쨌든 뉴욕 편에서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문 작가의 글을 이 책에서 비로소 다시 보게 되었다. 그만큼 홋가이도 편에서 문지혁 작가의 글은 여행지만큼이나 빛났고, 홋가이도의 풍광과 분위기를 잘 녹여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의 글과 사진을 보며 가본 적도 없는 홋가이도가 너무도 그리워졌으니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오타루라는 도시 이름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영화 러브레터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인상 깊게 본 작품이라 이 영화를 나중에 생각하긴 했지만 그 보다 최근의 기억이라 그런지 2012년 방영됐던 드라마 한 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당시 미모의 중년 여배우와 열 살 연하의 꽃미남 배우가 멜로 주인공인 드라마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여기서 두 주인공의 사랑이 싹트는 곳이 바로 일본 오타루였다. 믿기 어려울 만큼 새하얀 설원, 영화 러브레터에서 봤던 시계탑, 셀 수 없이 많은 오르골 중 하나의 오르골이 만들어 내는 단 하나의 멜로디가 귓가에 머물던 오르골당, 그리고 색색의 불빛이 찬란했던 밤의 오타루 운하 등 두 사람의 만남이 이어지는 장소들이 모두 그야말로 오타루의 움직이는 관광지도나 다름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인 잊고 있던 그 오타루의 낯익은 모습들을 보자 TV로나 봤던 겨울의 오타루가 더욱 생생히 기억이 났고, 의외로 책에서는 다른 계절의 오타루만 보여 아쉬움 반 새로움 반이었다.

 

오타루의 운하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그렇게 오타루를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 소설가인 저자는 미니 픽션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며 한 도시에서의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이 부분이 또한 이 책의 백미이다. 불과 몇 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인데 방금 돌아본 여행지와 무관하지 않는 그 내용이 전하는 여운은 여행지에서의 인상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짧은 소설로 오타루에 대한 기억을 일갈하고 다음 여행지 삿포로를 다시 비어진 마음으로 또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삿포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란 별, 그리고 맥주 이야기는 뒤에서나 나오게 처음 삿포로를 맞이한 건 예상치도 못한 삿포로 텔레비전 탑이었다. 에펠탑이나 도쿄타워와는 비교할 바가 안 되더라도 비슷한 형상을 한 채 삿포로의 전망을 책임지고 있는 이 탑이 왠지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일본과 썩 어울린다.

 

또 한 편의 미니 소설 이후 한 때 홋카이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하코다테를 만날 수 있다. 오타루와 삿포로는 알았어도 하코다테는 낯선 이름처럼 생경한 도시였다. 이 하코다테에서 드디어 홋카이도의 겨울 풍광이 펼쳐질 줄이야. 그리고 하코다테산에서의 그 눈부신 전망을 품고 있는 도시인 줄 진정 몰랐다. 또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불리지만 결국 그 믿음이 가서 닿는 곳은 같을 서양식 교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그런 한편 군집을 이루며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여행자의 눈에는 이런 풍경도 색다른 볼거리로만 지나쳐지지 않는다. 여행에서 풍경은 사색이 되고 철학이 된다.

 

아직 혼자서 멀리 여행을 떠난 적 없는 내게 이런 여행기는 큰 자극이 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는데, 금세 갖가지 핑계들 뒤로 숨어버리는 겁쟁이인 나를 또 발견하고야 말았다. 나홀로 여행을 떠나본 친구가 언젠가 말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면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시간은 흐르고 어느 순간 겁쟁이였던 자신이 거침없는 여행자가 되어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시작이 정말 쉽지가 않다.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한 거라면 그 때는 과연 언제 찾아올 건인지 속수무책 기다릴 뿐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