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상상 라디오

by 푸른바람꽃 2015. 2. 25.
상상 라디오 상상 라디오
권남희, 이토 세이코 | 영림카디널 | 2015021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삼나무 꼭대기에 한 남자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DJ 아크라고 소개하며 ‘상상’으로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인 “상상 라디오”를 진행한다. 이 소설이 대강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읽어 나간다면 꽤나 황당한 설정과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야기를 오가는 전개 등으로 책의 내용이 쉽지만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줄거리를 알고 읽었음에도 중반 이후부터는 상상인지 현실인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마저도 모호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DJ 아크는 이미 고인이 된 영혼이었고, 그가 삼나무 꼭대기에 걸리게 된 이유는 2011년 후쿠시마와 미야기현 등 도호쿠 지역을 휩쓸고 간 지진과 쓰나미 때문이었다.

 

당시 갑작스런 자연재해로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영혼이 된 그들은 스스로도 어쩌다 암흑과도 같은 세상을 떠도는 존재가 되었는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크 역시 자신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토막 난 기억들을 조합해 가며 상황을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아크는 그의 가족들 생사조차 알 수 없어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어디선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들과 아내가 그에게 소식을 전해줄 것이란 희망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아내의 응답은 없고, 그와 같은 처지의 영혼들은 저마다 갑자기 마주한 ‘죽음’을 마치 중계 또는 제보하는 것처럼 아크에게 사연을 보내온다. 이들의 사연을 전하면서 아크 자신도 그의 죽음을 자각해 나가는 동시에 삶을 돌아본다. 이렇든 영혼들의 라디오 방송이 한창일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도 끼어들면서 삶과 죽음 그 양 끝에 놓인 이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영혼을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 그리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직 경험한 적 없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간혹 갑작스런 부고를 접할 때마다 죽음이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님을 실감케 된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는 것인데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흔히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 하지만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인생 또한 마냥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책도 독자들에게 그런 교훈을 주려는 것보다 피상적으로 생각해 온 죽음을 상상력을 발휘해 죽은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 듣는 형태로 우리에게 묘사한다.

 

삼나무에 걸린 아들을 찾아온 아크의 아버지 모습이나 아크가 들려주는 아들과의 일화 등에서 유독 부자간의 정이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연들 사이사이에 아크는 실제 라디오처럼 음악들을 선곡해 들려주는데 그 때만큼은 책에서 오디오 기능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제외하면 모두 모르는 곡들뿐이라서 나중에라도 한 번씩 찾아들어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각양각색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을 뒤로한 채 또 삶은 계속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 진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