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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놀이

by 푸른바람꽃 2015. 5. 23.
꽃그림자놀이 꽃그림자놀이
박소연 | 나무옆의자 | 201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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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 한국 문학, 소설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로서는 최근 몇 년간 그나마 꾸준하게 책을, 그 중에서도 유독 소설을 탐독해 왔던 까닭에 이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래 서점에 나가보면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한 대다수의 책이 외국의 번역서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으로는 자극적으로만 흐르는 소설의 장르화와 화제를 모으는 한국 신간의 부재라고도 하던데,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가치를 발하는 것이 문학상 수상작들이 아닌가 싶다. 박소연 이라는 새로운 작가를 내게 알려준 <꽃그림자놀이> 역시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조선 정조 시대 문체반정으로 소설이 금지되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액자식 구성으로 쉽게 말해 전체를 관통하는 큰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작은 이야기들이 액자처럼 들어가 있다. 따라서 이런 소설들은 한 권을 읽고 있지만 마치 여러 편의 작품을 읽고 있는 듯 각각의 이야기가 가지는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꽃그림자놀이>에서도 이런 액자 소설의 묘미가 잘 살아 있었다. 친구 최린을 만나러 서울로 상경한 선비 조인선이 눈보라에 길을 잃고 헤매다 책의 표지처럼 매화꽃이 핀 어느 상서로운 집을 발견한다. 하지만 얼마 후 최린을 만난 인서는 그 집에 대해 말을 하고 친구는 깜짝 놀라며 '귀신‘이 나오는 집이니 그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서울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으로 장안에서 소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이를 빌려주는 세책점이 성행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조인서는 소설을 하찮게 생각했고 귀신 또한 믿지 않았다. 그런 그가 운명처럼 다시 제 발로 그 집을 찾아갔는데 간밤에는 뭐에 홀린 것인지 폐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인서는 우연히 주운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자신도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읽게 되는 또 다른 아홉 가지의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옛날이야기로나 듣던 도깨비감투(능텅감투)의 성인 버전을 보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필두로 익숙한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도미 설화, 몽고에 항쟁한 삼별초의 숨겨진 이야기, 별주부전과 어딘가 닮은 이야기 등 가릴 것 없이 소재가 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여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 이런 이야기와는 별개로 조인서가 교리 노인의 내기를 수락해 귀신 든 집에서 살며 이 집에 얽힌 사연이 무엇인지 차츰 알아가며 또 소설을 천시했던 그가 소설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이면서 겪게 되는 일들도 펼쳐진다. 이밖에 계심이나 란, 그리고 귀신인지 사람인지 베일에 가렸던 그녀까지 사내는 아니지만 포부를 가지고 자신들이 뜻한 바를 호기롭게 행하는 모습 등이 시대 배경을 놓고 보면 새롭다.

 

다만, 이 책에서도 아쉬운 점은 남았다. 우선은 유현당에 얽힌 내막이 너무 순식간에 드러나 버리고 또 그 내용에서 극적인 맛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는 책속의 책으로 등장한 아홉가지의 이야기 중 대부분이 소재는 다를까 몰라도 욕정을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거나 불행해 졌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당대 소설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그런건지 작가의 의도인건지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또 비슷한 과정과 결론으로 치닫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봐도 문화를 억압해서 지배에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것을 발단으로 더 큰 폭동과 반발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화에 대한 욕망은 강력하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 즉 이야기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이 즐거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의지 등은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 당장은 한국의 출판문화와 소설 등에 위기가 닥쳤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을지 몰라도 이 위기도 곧 지나갈 것임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금 확신이 든다. 소설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