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 황석영 장편소설
![]() | 여울물 소리 황석영(Hwang Sok-yong) | 자음과모음 | 20121119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이야기는 사람과 함께 태어났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도 탄생하였을 테니 말이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던 우리의 조상들에게 이야기는 삶의 즐거움이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체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요즘도 이 같은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은 여전하다. 다만 이야기의 형태와 전하는 사람만 달라졌을 뿐.
어느덧 등단 50주년을 맞았다는 일흔의 작가 황석영도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 <여울물 소리>는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 했다. 저자 황석영의 삶을 자세히는 몰라도 그가 겪은 전쟁과 민주화, 급속한 경제성장 등은 그의 전작들에서도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의 삶은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로 종종 드러나 보였다. 그래서 굳이 자전적 소설이라 부르지 않아도 작가 황석영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지어진 까닭은 그의 삶을 구성했던 단편적인 순간이 아닌 “작가”의 길을 걸어온 그 긴 세월을 작품 속 주인공에게 그대로 투영시켜 보려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신 책 속의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쯤 거슬러 올라간 19세기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영리한 작가는 주인공 ‘이신통’과 독자들과의 만남을 ‘연옥’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뤄지도록 장치해 두어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작품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간다.
관기 출신에 양반의 첩이었던 어미에게서 난 ‘연옥’은 서녀였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이신통’ 또한 중인의 서얼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몇 년이 흘러 재회하고 다시 헤어지기까지 겉에서 보기에는 스치는 인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옥’은 ‘이신통’을 마음에 품고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은 채 ‘이신통’의 행적을 쫓아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꿈꾼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한낱 전기수에 불과했던 ‘이신통’이 흘러 떠도는 이야기,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전달되고 있다.
재주는 뛰어나되 신분이 미천하였던 ‘이신통’은 천지도를 만나 혁명가로 거듭난다. 그리고 ‘연옥’은 그런 ‘이신통’을 이해하고 그녀 역시 천지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한다. 양반들의 질서는 무너지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날로 더해졌으며, 외세의 침략은 잦고, 하루라도 끼니 걱정 하지 않는 날이 없을만큼 고단해도 울고 웃으며 삶을 버텨나가던 조선 후기의 혼란했던 시대가 평범했던 사람들을 혁명가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길고 긴 역사 앞에서 개인은 작은 점에 불과할 지 몰라도 그가 바꾸는 세상은 새로운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도 언젠가는 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진정한 지도자가 나타날까? 안타깝게도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나 보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서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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