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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푸른바람꽃 2013. 7. 11. 09:32
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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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을 돌이켜 볼 때마다 그럴듯한 멋진 추억하나 없는 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별할 것 없는 가정에서 평범함 그 자체로 고교 2년을 보냈다. 그러다 마지막 반전처럼 고3 수험생 시절에는 건강 문제로 거의 1년을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한 채 졸업장만 받고 고등학교에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밀레니엄을 떠들며 순식간에 세기는 바뀌었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고교 시절의 미련 때문에 요즘도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때로 다시 돌아가 잊지 못할 예쁜 기억 하나 갖고 싶을 만큼...

 

<안녕, 내 모든 것>에도 세 명의 고등학생-세미, 준모, 지혜-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나의 로망인 낭만적 추억담 대신 음울하고 비밀이 가득했던 그 때 그 시절을 들려준다. 이야기의 프롤로그 격인 도입부에서는 학원 강사가 된 30대의 지혜가 등장한다. 근데 특이한 점은 바로 이어서 지혜의 과거가 아닌 세미의 과거 시점에서 다시 본격적인 이야기가 출발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업 실패와 이혼, 채무 도피 등으로 부잣집 조부모 댁에 맡겨진 세미, 욕설 틱 장애를 가진 준모, 그리고 최근 방영된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한 번 보거나 들은 것은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히는 ‘포토그래프 메모리’의 소유자 지혜까지 세 명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1990년대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이 고등학생일 무렵 나는 초등학생 내지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시간과 몇 년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로 공감을 느꼈던 것처럼 <안녕, 내 모든 것>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김일성 사망, 대구 지하철 공사장 사고 등 흐릿한 기억 속의 사건들이 뇌리를 스치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야기는 세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낯선 공간에 혼자 버려지다시피 한 세미의 외로움이나 부모와의 단절 등은 주변적인 요소 같았고,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상징했던 할머니의 짧은 최후가 전체 내용에서 가장 강렬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책에서 준모와 지혜의 삶에 대한 짧은 서사는 세미의 주변인으로서의 기록에 지나지 않아 좀 아쉬웠다. 그네들의 삶도 세미와 함께 정삼각형의 대등한 꼭짓점으로서의 비중을 차지했더라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처음부터 세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저자가 새롭게 선보인 서사 구조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질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데 비해 정신적으론 가장 빈곤한 축에 속하는 세미와 그 가족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삼풍백화점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까 내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겉은 화려하고 멀쩡해 보여도 속에서는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 친구의 방황하던 청소년기도 함께 간직한 비밀을 끝으로 종지부를 맞는다. 독자로서는 그 사건의 이후가 가장 궁금한데 작가는 불친절하게도 에필로그로 사건 직후의 광경만 잠깐 묘사해 줄 뿐 그 이후 세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적당히 추측할 단서만 남기며 아련히 끝맺는다. 어디선가 누군가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 안겨준 채.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