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영문판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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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설레는 시간이 나는 여행가방을 꾸릴 무렵이다. 다가올 여정을 생각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씩 챙기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여행지로 훌쩍 떠나 있다. 쓸모없이 짐스러울 것이 뻔한 물건까지도 이것 저것 가득 가방에 눌러 담고, 여행을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 그것은 여행지에서의 추억과는 또 다른 형태의 즐거움이다.
며칠 전 작은 상자에 든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여행자>는 일상에서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인생의 여행을 이야기 한다. 따라서 주인공 '찰리'는 우리들 자신이며, 그의 여정을 심킨 형제는 멋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책은 영문 합본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두께가 수첩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한글판의 활자들만 모은다면 A4 용지 한 장도 채 못 되는 짧은 글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글이 안겨주는 여운은 매우 길다.
주인공인 '찰리'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님, 같이 놀 친구들, 그리고 예쁜 여자친구와 애완동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잠금장치가 튼튼한 녹색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는 찰리가 그 가방에 과연 무엇을 담을 지 궁금했다. 그런데 찰리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으로 그 가방을 가득 채웠다. 시간! 찰리는 그 가방에 그의 시간을 담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모두 쏟을만큼 완벽한 것을 찾기 위한 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숲과 사막, 바다를 지나고, 무수히 많은 경험이 찰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찰리에게는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완벽하지 않을 지는 몰라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완벽한 무엇을 찾기 위해 일생을 방황했던 찰리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닮았다. 완벽한 직업, 배우자, 가정, 친구... 그런 것들을 꿈꾸며 그것을 찾아야만 행복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완벽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의 조건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완벽하다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찰리'가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에서 아무리 완벽함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이 빠진 그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먼 곳만을 바라보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시간을 아껴두었다가 완벽한 것을 찾으면 그 때 그 시간을 쓰고자 했던 '찰리'처럼 지금의 행복은 느낄 수 없다. 인생의 여행이 반드시 새로운 모험으로만 가득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면, 매일 아침이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날이며 모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심킨 형제의 이 예쁜 동화를 만난 것도 내게는 생각을 바꾸는 새로운 모험의 일종이었던 것처럼...
책이란 모름지기 읽을 거리가 풍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를 통해 글의 양보다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짧은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여행자>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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