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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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친구와 문자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허겁지겁 내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는 내게 "혹시 앞 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를 못 봤냐"고 물어 왔다. 할머니? 내 앞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가? 버스에 타면서부터 난 줄곧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고,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앞 자리에 앉은 사람의 인상착의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모른다는 나의 송구스런 답변에 더욱 불안해 하시던 할아버지...다행히 건너편 자리에 앉아 계셨던 한 아주머니가 방금 지나온 정류장에서 할머니 혼자 내리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발을 동동 거리시며, "정신도 온전치 못한 사람이 혼자 내리긴 왜 내려..."하고 무너질 듯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선 버스가 서자마자 할머니를 찾기 위해 달려 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 날 할아버지는 무사히 할머니를 만나셨을까?
무려 초판 113쇄 발행본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나는 자꾸 버스에서의 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책에서나 현실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린 두 할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안쓰럽다가도 한편으로는 금새 같이 있던 할머니의 행방을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에게 묻고 있는 그 부주의함을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런 원망을 담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너'와 '그'의 엄마, 그리고 '당신'의 아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엄마에게도......라는 상상을 하게 했다. 당연한 일을 왜 그제야 깨달았는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p.36)
우리의 엄마는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엄마이지 않았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희생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니까 으레 당신 자신보다 자식이 먼저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연함 속에 우리가 엄마의 인생을 훔치고 있다는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서.
어릴 적에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너도 네 오빠처럼 사내로 태어나지 그랬냐..."하신 적이 있다. 아들 귀한 집안이라 어른들께 아들이 더 대접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이 혐해진 탓도 있었지만, 엄마의 말 속에는 엄마처럼 여자의 운명을 살아가야 할 딸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의 '박소녀'가 둘째 딸을 보며 애처로워 하는 심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수재 소리 듣던 똑똑한 딸이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로서 손주 녀석들보다 고생하는 딸이 더 눈에 밟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새끼 고생시키는 것들은 세상 그 누구라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전사가 바로 우리들의 엄마다.
'너'와 '그', '당신'의 고해성사가 끝나고 이어진 [4장 또다른 여인]편에서는 드디어 상실의 대상인 엄마가 입을 연다. 각자가 기억하는 엄마와 아내로서가 아닌 '박소녀'란 사람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4장에서 나는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잃어버린 '엄마'의 목소리가 곁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아 반가움에 울었고, 고달팠던 '엄마'의 인생이 가여워서 울었으며, 끝까지 자식들 걱정으로 한숨 짓는 '엄마'때문에 울었다. 마지막에 '엄마'는 연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인제 좀 놓아달라고, 그만 집으로 가겠다고, 가서 쉬고 싶다고...... 처음 시집 와서 자식들을 낳고 길렀던 집도 엄마에게는 진정한 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치고 아픈 걸음으로 엄마가 돌아간 집은 바로 '엄마'의 엄마가 두 팔 벌려 맞아주는 따뜻한 품 속이었다. 그 품에 뛰어들어 안기고 나서야 엄마는 진정한 안식을 얻는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p.254)
아직은 난 엄마와의 이별이 상상은 커녕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게 계속 부정하며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나 역시 일평생 엄마가 필요할텐데,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디서 엄마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내게 암흑이고 절망이다. 속된 내 이기심일 지언정 내가 사는 동안 엄마를 내 곁에 꼭 붙잡아 두고만 싶다. 가끔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나는 "다음 생에 우리 다시 만난다면, 그 땐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을 더 이상 불확실한 다음 생으로 미루지 않겠다. 지금이 아닌 다음이란 없다는 것을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직접 확인했으면서도 훗날 바보처럼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이 생에서 내가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찾아 실천에 옮기는 것! 그것만이 앞으로의 후회와 상심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지금 이 순간, 나의 엄마를 믿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양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 《한씨외전(韓氏外傳)》 9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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