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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반란 시기의 로마를 말하다

by 푸른바람꽃 2010. 1. 29.

로마 서브 로사. 2: 네메시스의 팔

저자 스티븐 세일러  역자 박웅희  원저자 Saylor, Steven  
출판사 추수밭   발간일 2010.01.15
책소개 영욕의 역사, 로마의 속살이 공개된다! 역사추리소설의 거장 스티븐 세일러의 대표작 로마 서브 로사 ...

 

몇 주 전부터 가능하면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도망 노비를 쫓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추노'.

태어나면서 이미 신분이 정해지기도 하고, 기구한 사연으로 신분이 뒤바뀌기도 하지만, 주인과 노비라는 불평등한 신분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사람이 사람의 재산이고, 소와 말보다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하며, 생사조차 주인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상을 보며  그 시절 양반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아예 세상구경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듯 했다. 갑자기 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로마 서브 로사 2 :네메시스의 팔>에 등장하는 로마 귀족의 노예들이 '추노'의 노비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나는 <로마 서브 로사>와 같은 아직 완간되지 않은 시리즈의 책은 완간될 때까지 읽지 않는 편이다.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못 견뎌하는 탓에 어릴 때 만화책마저도 완결본만 읽었다. 그래서 <로마 서브 로사>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책에 대해 알아보던 중 이 책이 10권의 시리즈 중 국내에서는 이제 막 1권이 출판된 상태라는 것을 알고 결국 10권이 모두 출판될 때까지 이 책은 내 관심목록에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모두 칭찬 일색이지 않은가!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라는 입소문을 직접 확인한 후에는 도저히 나중으로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도 건너띄고 <로마 서브 로사 2 :네메시스의 팔>부터 읽기 시작했다.

 

<로마 서브 로사 2 :네메시스의 팔>은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 시기인 BC 7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당시, 로마 최고의 부자였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훗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토벌하고 집정관을 지냈으며 폼페이우스 및 카이사르와 3두정치를 하였던 로마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의 친척 루키우스가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주인공 고르디아누스가 이 사건해결을 의뢰받고 아들 에코와 함께 사건 현장으로 향하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르디아누스가 사건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범인을 사건이 있던 날 밤 도망간 노예 두 명이라 단정짓고 있었고, 그들의 죄를 물어 크라수스의 빌라에서 일하는 노예 전부를 사형시킬 예정에 있었다.

 

두 명의 노예가 저지를 죄를 아흔 아홉 명의 노예가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으나, 여기에는 크라수스만의 정치적 과시를 위한 본보기라는 명분이 더 크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크라수스는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을 진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참이었는데 제 집에서 노예가 주인을 죽이고 도망쳤으니 그것을 그냥 넘긴다면 자신이 로마 전체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전시용 노예 학살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진압권을 쥐어주리라는 계산도 숨어 있었다. 결국 고르디아누스는 피살된 루키우스의 장례식 후 행해질 노예들의 집단 사형을 막으려면 단 사흘만에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목격자도 없고, 용의자는 달아나 행방을 알 수 없으며, 확실한 사건의 증거도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립탐정 '더듬이'로 불리는 고르디아누스지만 이쯤 되면 사건해결이고 뭐고 얼른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 뿐이었으리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로마 공화정에 대한 내용들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들과 즐겨 보았던 미드 ROME, 그리고 곳곳에서 귀동냥으로 알게 된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로마 서브 로사 2 :네메시스의 팔>은 내게 매우 신선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책에 섬세하게 묘사된 로마의 목욕 문화, 장례 풍습, 주술 신앙, 노예문제, 당시 로마의 정치적 상황 등은 로마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 망원경과 같았다. 비로소 나는 왜 <로마 서브 로사>를 '지적 역사추리소설의 결정판'이라 호평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고르디아누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함으로써 사건의 현장감을 더한다.

 

이 책은 워낙 저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탁월한 묘사로 인해 책이 아니라 3D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나는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도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장면은 도입부에 등장했던 3단노 갤리선의 노잡이 노예들의 실상이었다.

 

항해 도중 어느 시점부터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규칙적으로 삐걱거리는 노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곡물 빻는 기계의 바퀴를 잊듯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누가 기름을 쳐줄 때가 되기 전에 바퀴의 존재를 의식하며,

누가 아프거나 주리거나 과격해지기 전에 노예의 존재를 의식한단 말인가?   (p. 40)           

 

당시 노예들의 처지를 빗대어 묘사한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역사에도 존재하는 노비들... 족보 대신 노비문서에나 이름을 남기고 떠난 그들의 가련한 인생이 안쓰러웠다.

 

오리무중이었던 이 사건은 막바지에 이르러 시시하게 해결될 것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이것 마저도 고난도의 트릭이었으며, 마지막까지 반전을 숨겨둔 채 독자들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범인과 완전히 어긋난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이런 추리소설의 묘미이지 않을까? 그리고 드디어 부제였던 네메시스의 팔이 갖는 의미도 밝혀진다. 율법의 여신 네메시스와 사건 해결에 음과 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네메시스의 팔. 이 조합 속에 살인사건은 진실과 정의라는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른다. 그러나 <로마 서브 로사>의 긴 여행은 이제 시작되었다. 앞으로 10권까지 고르디아누스를 쫓으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 그래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p.441)라는 고르디아누스의 마지막 독백은 벌써 그와 함께 떠날 다음 여행을 한껏 기대하게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