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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 열여섯살 초보 아빠, 샘의 성장기

by 푸른바람꽃 2010. 2. 24.

슬램

저자 닉 혼비  역자 박경희  원저자 Hornby, Nick  
출판사 MEDIA2.0   발간일 2010.02.15
책소개 열여섯에 애 아빠가 된다고?! 어바웃 어 보이, 하이 피델리티의 작가 닉 혼비 장편소설 『슬램』....

 

열여섯. 그 때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은 아마도 성적이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몇 년 간 그랬던 것 같다. 공부 외에는 아이돌 그룹과 순정 만화, 드라마 등에 빠져 살았고, 숫기가 없어서 이성친구와의 교제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요즘 십대 청소년들도 여전히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이성친구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대표적인 예가 청소년 임신이다. 최근에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십대 부모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여전히 앳된 모습의 소녀가 학교 갈 시간에 집에서 아기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보며 소녀와 아기 모두 안타까웠다. 물론 그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책임감 있는 태도는 칭찬받아야 겠지만, 일을 그 지경으로 몰고간 아이들의 무분별한 이성교제만큼은 이해해 줄 수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청소년 임신'. 닉 혼비의 <슬램>에서는 이 문제를 사건의 당사자인 열여섯살 초보 아빠 샘의 입을 통해 직접 들려주고 있었다.

 

<슬램>의 저자인 닉 혼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들의 원작자이자 기획자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철 없던 주인공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절한 유머와 공감가는 내용들로 잘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그런 그가 <슬램>에서는 열여섯살 소년, 샘을 소개해 주었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샘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스케이트 보드고, 그의 우상은 당연히 유명한 스케이트 보더 토니 호크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다른 지역에 살면서 가끔 샘과 만난다. 매일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예쁜 여학생과 사귈 궁리나 하던 샘. 그러나 그의 평화롭던 일상은 앨리시아를 만나면서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잠깐의 실수로 앨리시아가 임신을 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활활 불타오르던 연애감정이 시들해지고 그녀와 헤어지려고 슬금슬금 연락마저 피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나 역시 슬램(보드에서 떨어지는 것)했다.

그것도 이제껏 당해 보지 못한, 그런 슬램.

바퀴가 트럭에서 날아가고, 트럭은 데크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5미터 공중으로 튀어 올라갔다가 그대로 벽돌 담장에 처박혔다.

여하간 내 심정은 그랬다. 긁힌 자국 하나 없이.   (p.  215)

 

샘은 앨리시아의 임신일 지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딱 제 나이에 맞게 행동한다. 엄마에게 혼 날 것이 무섭고, 앨리시아의 임신이 사실일까봐 두려운 나머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고작 열여섯살에 아빠가 되야 한다면 누구라도 샘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게다가 샘은 그 자신이 바로 그의 부모가 열여섯에 낳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더 컸다. 샘은 자라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모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리 분별이 가능해진 후 자연스럽게 그것을 눈치챈 아이다. 그런데 자신이 부모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까.

 

샘이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 <슬램>은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샘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한다. 임신에 대한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의 단계를 거쳐 수용하기까지 그의 일기와도 같은 이 책에는 그 또래 아이들의 정서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샘의 지나치게 솔직한 마음은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글로 가볍게 들려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도 있어서 혹시라도 식상하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런 걱정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영화 <주노>에서는 임신한 여학생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해 나갔었다. 그러므로 <주노>에서도 미처 깊게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임신한 여자친구를 둔 남학생의 이야기를 <슬램>에서는 원없이 만날 수 있어서 새로웠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아빠부터 되어야 했던 샘. 마음만 먹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아이의 아빠가 되기로 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어짜피 처음부터 좋은 아빠란 없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차츰 좋은 아빠가 되어갈 뿐이다. 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얼핏 미래의 모습을 보니 그는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샘의 말처럼 그가 무사히 해 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끔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스케이트 보드의 기술을 익혔던 것처럼 그의 삶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샘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