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여자 형제가 없다. 그래서 늘 여자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었다. 오빠와의 총싸움 두 번에 인형 놀이 한 번이라는 불공정 거래를 통해 여자 형제가 없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소꿉놀이와 인형놀이를 24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서 언니나 여동생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날 무렵에는 엄마나 친구에게도 말 못하는 이야기들을 일기장이 아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나는 진심으로 언니를 갖고 싶었다. 내 마음을 다독여 줄 속 깊고 따뜻한 언니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 지금도 언니가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이런 속내를 드러내곤 하는데, 실제로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서로 자기네 언니들을 데려가라 아우성이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은 여기에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지난 주, 드디어 내게도 언니가 생겼다. <여자공감>이라는 새로운 책으로 찾아온 저자 안은영이 그 주인공이다. 비록 만나본 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작가지만, 지금껏 내가 언니들에게 듣고 싶었던 위로와 충고, 칭찬 등을 저자는 책을 통해 아낌없이 들려준다. 그래서 이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후배 "J"는 인복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띠지에서도 잘 보이는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여자생활백서'를 썼던 안은영 기자이다. 몇 년 전 모 통신사의 생활백서 시리즈 광고가 화제를 모으자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생활백서라는 타이틀을 단 각종 콘텐츠들이 쏟아졌었다. <여자생활백서>도 그 때 등장했던 책 중 하나다. 쪽집게 무당처럼 여자들의 여우같은 속내를 콕 집어 내고, 그녀들의 그런 입맛에 잘 맞도록 갖은 생활 기술들로 맛을 더한 <여자생활백서>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저자는 몇 권의 책을 더 냈고, 올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여성들을 위한 <여자공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자공감>은 광범위한 제목과 달리 여자들 중에서도 2030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25~35세 여성들이 읽는다면 시종일관 "맞아! 맞아!"를 외치게 될 내용들이 제법 많다. 20대 중반을 지날 때가 되면 다시 겪는 사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혼란을 경험하게 되곤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해 봤자 내 고민이 친구의 고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뿐이다. 따라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울 때는 차라리 이 시기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담과 충고, 조언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삶의 '멘토'가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작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그러한 멘토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전의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 그녀의 조언들이 생활의 '방법'들에 대한 것이라면, <여자공감>에서는 길을 걷다 만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경험담과 조언들을 전한다.
인생을 살아온 측면에선 배울 점이 많은 인생 선배이면서,
이러쿵저러쿵 내 인생에 대해 아는 척해서 가뜩이나 뭉쳐있는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언니의 측면을 두루 가진, 말하자면 만만하면서 따끔한 멘토 같은 존재 (p. 102)
본문에서도 등장하듯이 저자의 '멘토'에 대한 가치관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와 모든 후배들이 꿈꾸는 그런 멘토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책이 바로 <여자공감>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은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거나 표시하는 것을 포기했다. 살다가 책 속의 후배 "J"처럼 마음이 헛헛해 언니를 찾고 싶은 날에는 차라리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초반까지는 독기를 품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그들을 닮고자 했으나, 지금은 <여자공감>과 같이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들에게서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얻는다.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조용히 저자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과 헝클어진 마음속이 다시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곧 있으면 친한 친구의 생일이다.
올해는 또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됐는데, 그 고민에 마침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 책이 여러모로 고맙다.
'冊 it n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심장을 쏴라 - 두려움 없이 세상과 맞서는 용기! (0) | 2010.02.25 |
---|---|
슬램 - 열여섯살 초보 아빠, 샘의 성장기 (0) | 2010.02.24 |
교통경찰의 밤 - 교통사고의 어두운 그림자 (0) | 2010.02.17 |
프로즌 파이어 - 차갑고 뜨거운 10대들의 성장통 (0) | 2010.02.10 |
악몽의 엘리베이터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의 재구성 (0) | 2010.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