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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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가득하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줄지어 서서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베란다 창고에서 물건을 꺼낼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가끔 부주의로 여린 줄기가 툭 꺾이거나 꽃이 후두둑 떨어져 버리면 괜히 냐 마음도 좋지 않다. 특히 우리집 화분들은 엄마가 자식처럼 애지중지 돌보는 까닭에 작은 상처라도 엄마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 없어서 더욱 각별하다. 집에 이렇게 화분이 모이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파트 단지 화단에 버려진 화초들을 하나씩 집으로 가져오면서 시작됐다. 관리를 못해 말라 죽은 녀석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엄마가 다시 살려보겠다며 집으로 들인 것이다. 가족들은 모두 집안에 쓰레기만 늘리게 될 것이라며 만류했었다. 그래도 엄마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나중에는 보란듯이 다 죽어가던 화초를 다시 살려내는 놀라운 마술을 부렸다. 그렇게 모인 화분들과 가족들이 엄마의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선물한 화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집 베란다는 나름 실내 정원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 몰라도 사람들은 식물이 시름시름 병들어가면 엄마에게 화분을 맡기고 다시 건강을 되찾으면 찾아가곤 한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이러한 엄마의 화분 가꾸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책을 멀리하게 됐다. 그래서 나라도 대신 이 책을 읽어 유용한 정보가 있다면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진선북스의 모험도감이나 놀이도감을 소장하고 있는 터라 '도감'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전문적인 내용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에 <원예도감>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했던대로 <원예도감>은 딱딱한 방법론 책이 아니라, 재밌고 즐겁게 놀이를 하는 것처럼 나만의 정원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친절한 안내서였다. 그 중에서도 책의 마지막 즈음에 정원에서 수확한 열매와 채소를 활용한 레시피까지 담겨 있는 것을 보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도감'이란 제목에 걸맞게 이토록 다양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해 내는 것도 저자 사토우치 아이의 재주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이라는 말에 지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작가는 '누구나 정원사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정원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 문학 작품을 비롯한 책 속에 등장하는 정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서 정원의 종류부터 시작해 원예에 필요한 잡다한 도구들, 식물들의 터전인 토양 만드는 법, 씨앗이나 모종심기에서 가꾸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식물이 물만 잘 주면 쑥쑥 자라는 줄 안다. 그러나 식물을 직접 키워보면 화초 가꾸기가 얼마나 까다로운 일이지 새삼 깨닫는다. 물을 주되 어느 만큼 얼마나 자주 줘야하는지, 온도와 습도, 일조량은 어떻게 유지해야 좋은지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무조건 물만 주다 보면 어느날 아침 초록 잎은 시들해져 버린다. 그래서 <원예도감>과 같은 책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제대로 식물을 키울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동물처럼 소리내고 움직이지는 못해도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을 혹시라도 나로 인해 죽게 될까봐 겁이 났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짐작이나 한 듯,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다시 한 번 꽃과 채소 키우기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실패를 하면 그 원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실패를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가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p.262)
이제 곧 봄이 온다. 봄기운을 가장 먼저 몰고 오는 것이 꽃이고 나무들이다. 그 싱싱한 생명력을 늘 우리에게 나눠주기만 하는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매년 봄이 되면 꽃가게에서 모종을 구입해 화분에 옮겨 심곤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원예도감>에 정리돼 있는 '1년 내내 꽃 피는 정원계획'표를 참고하여 직접 씨앗을 구해 뿌려보고 싶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등학교 실과 실습 때 이후로 한 번도 씨앗을 땅에 심어본 일이 없었다.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면, 왠지 모를 희망과 기대감으로 벅차 오르는 기분이다. 내일은 모처럼 베란다의 화분들을 정리하며 새로운 식구를 맞을 준비도 미리 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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