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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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이 말이 갖는 미묘한 차이를 무시하고 나는 그간 명복, 추도 등과 비슷한 말로 생각해 왔다. 어렴풋이 단어의 의미만 알고 있을 뿐, 내가 이 단어를 소리내어 사용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일까? 내게 있어 '애도'는 그 자체가 낯설었고, 한편으론 죽음과 맞닿은 이 말이 왠지 꺼림칙 했다. 그런데 이 '애도'를 하기 위해 5년째 매일 죽은 사람들만 찾아 떠도는 여행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는 사람'이라 불렀고, 그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시즈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시즈토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죽은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 자리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며 그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한다. 이것은 그에게 하나의 의식(儀式)과도 같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적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애도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고인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받았으며, 누구에게 감사 받았는지 이 세 가지를 묻고 다닌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황당할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열에 아홉은 죽음의 원인이나 정황 등을 묻기 마련인데 시즈토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더구나 고인과 무관하다는 사람이 죽음의 자리에서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오른손은 하늘, 왼손은 땅을 향한 후 그 두 손을 왼쪽 가슴에 모으며 입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리고 있으니 모두들 그를 정신병자나 이상한 종교 단체의 광신도로 오해한다. 시즈토도 이제 이런 오해가 익숙한 듯 긴 설명 대신 병이라는 말로 일축한다.
시즈토의 '애도' 여행은 구도자의 순례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깨달음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아서 '애도'를 멈출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즈토에게는 "왜?"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저자 텐도 아라타는 궁금증에 조바심 치는 사람들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의문투성이 남자의 애도에 얽힌 사연이나 그의 애도가 갖는 본질적 의미 등을 시즈토 대신 그의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목격담을 통해 부분적인 것만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지만, 이 책 어디에서도 시즈토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없다. 이런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에 시즈토와 독자 사이의 거리는 매우 유동적이다. 세 명의 주요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잡지사 기자 마키노 고타로, 시즈토의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 시즈토와 동행하게 된 나기 유키요-의 이야기 속에서 시즈토는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워졌다가도 때로는 닿을 수 없을 만큼 저만치 멀어진다. 이렇듯 세 사람이 들려주는 시즈토의 이야기를 토대로 퍼즐을 맞추듯 한 조각씩 끼워 넣다 보면 어느 순간 시즈토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라나 우리는 죽음을 삶에서 떼어 놓고 싶어 한다. 죽음이 두렵고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죽는 순간 보다 죽고 나서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공포가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p. 432
작가는 이처럼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고찰하고,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애도하는 사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애도하는 사람'의 애도는 결코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죽은 이가 어떤 사람이었건 그들의 죽음에는 오히려 온기와 사랑이 가득하다. 그가 고인에 대해 묻고 다녔던 세 가지 질문의 비밀은 여기에서 밝혀 진다.
고인을 기억할 때, 죽음의 비참함과 비애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한다. (중략)
"그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가?
누군가가 어떤 일로 그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가?"
매일 같이 죽은 이들을 찾아다니지만 이 세 가지만 알 수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유일한 인물로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p. 265
그동안 생각해 온 '애도'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추억하며 그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과 시즈토의 애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시즈토를 만났을 때와 달리 마키노와 유키요는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죽음'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서 시즈토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들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다니는 동안 정작 본인 스스로 죽음을 준비해야 했던 준코 역시 막연하게 생각해 온 아들의 '애도'에 감동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아들이자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를 기다린다. <애도하는 사람>은 이렇게 삶과 죽음, 사랑을 '애도'라는 행위에 모두 담아 애써 누군가의 죽음을 잊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고인을 기억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많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텐도 아라타는 자신의 작품을 "이 세상에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소개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그의 이 말에 적극 공감했다. 마지막에 마키노와 준코, 유키요를 비롯해 시즈토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시즈토의 '애도'를 희망한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싶은 욕심은 내게도 있다. 시즈토처럼 나를 애도해 주는 단 한 명의 '애도하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있어 준다면 죽음의 순간도 그리 두렵거나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없다면 마키노나 유키요처럼 스스로 '애도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 책에서 충분히 '애도'의 방법을 배웠으니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애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언젠가 나를 위해 애도해 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시즈토의 애도사가 아직도 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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