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8시 59분쯤 뉴스가 방영되기 직전이면 한 TV 채널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케치 하듯 보여준다. 산, 강, 바다 등 자연의 비경들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특히 험준한 산 속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사찰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찰들이 왜 저토록 깊은 산 중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초월하듯 벼랑 끝이나 높고 높은 산, 바다와 맞닿은 기암괴석 위에 사찰이 자리한 것을 보면 그 곳에 처음 절을 지은 분들이 가히 존경스러웠다. 어릴 때는 종교적 의미를 떠나 산에만 오르면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으니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에 마냥 신기해 하며 절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불교 신자가 되어 차츰 절을 출입할 때 인사하는 법, 대웅전 법당을 출입하는 법 등 사찰 내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 경건한 종교적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방문했던 사찰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그곳에 보관된 문화재 등은 무심코 지나쳐 왔다.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우리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라는 책을 통해 내가 가 본 곳과 가 볼 곳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저자가 부제에서도 써 놓은 것처럼 사찰은 불교신자 뿐만 아니라 '그 누가 가도 좋을'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유럽으로 여행갔을 때 유명한 대성당들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다양한 곳에 미치고 있으므로 사찰 또한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빼 놓지 말아야 할 명소다. 따라서 사찰을 방문했을 때 대웅전 앞 마당만 돌아보고 나오지 말고, 그곳의 유래나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절에 얽힌 이야기 등도 함께 알아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호일 작가의 이 책은 그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우리나라의 사찰 27곳을 직접 순례한 견문록이다.
27곳의 사찰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분류하여 소개된다. 목차에서 소개되는 절의 이름은 대강 살펴 보아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이 27곳 중에서 내가 직접 가본 곳은 고작 7곳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7곳의 내용은 더 꼼꼼하게 읽으면서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무엇인지 되짚어 나갔다. 각각의 사찰 순례기에는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주를 이룬다. 또한 저자가 그동안 한국의 문화를 연구하며 알게된 해박한 지식들도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사찰 문화재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 등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낯선 불교용어들은 저자가 본문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 크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나는 여행 에세이에서 내용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것이 여행지의 생생한 느낌을 담은 사진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표지를 제외하고 모두 흑백사진이라서 생동감이 떨어진다. 사찰하면 떠오르는 단청의 아름다운 색깔이나 불상의 고고한 금빛 등은 전적으로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몹시 안타까웠다. 게다가 1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쓰여진 순례기이다 보니 책의 곳곳에는 벚꽃길이나 단풍이 물든 산 등 계절감을 나타내는 단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벚꽃이나 단풍 역시 흑백사진에 담겨 있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최소한 각 사찰의 대표적인 풍경만이라도 컬러사진으로 실었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계절에 맞추어 사찰로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게 하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는 그동안 우리가 구태여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찰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 준다. 우리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 온 사찰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도 그 보물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귀한 문화 유산인 사찰에 대한 가치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관리, 보호하여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은 27곳의 명찰(名刹) 안내서이자, 불교 문화와 가치의 이해를 돕는 지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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