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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 날카롭게 베인 상처를 치유하다

by 푸른바람꽃 2010. 3. 19.

풀밭 위의 식사

저자 전경린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2010.01.28
책소개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전경린 장편 소설 『풀밭 위의 식사』. ...

 

사람들은 곧잘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저마다 생각하고 꿈꾸는 ’캠퍼스 낭만’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내게 있어 ’캠퍼스의 낭만’은 핑크빛 연애보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풀밭 위의 식사>였다. 화창한 어느 날,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둘러앉아서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를 공유하는 편안한 소풍... 이것이 바로 고3 때 꿈꾸던 대학 캠퍼스의 가장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주로 학교 식당을 떠돌아 다닐 뿐 ’풀밭 위의 식사’는 손에 꼽을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몇 번의 소풍이 대학 생활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봤을 때도 나는 저자가 나와 비슷한 ’캠퍼스의 낭만’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 책에서 '풀밭'은 주인공 ’누경’의 과거와 미래에 각각 등장하는 장소다. 우선 과거에 등장하는 ’풀밭’은 그녀가 영원히 봉인해 버리고 싶은 고통과 아픔의 장소였다. 그러나 누경의 미래에서 언급되는 '풀밭'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의 장소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화합의 장소로 변모한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풀밭 위의 식사’는 주인공 누경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책에서 처음 ’누경’을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좀처럼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겉을 봐도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속은 그녀 쪽에서 결코 드러내지 않으니 알래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연한 자리에서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담게 된 ’기현’도 ’누경’에 대해 나와 비슷한 첫인상을 갖는다. 그 후 기현은 계속 누경에게 다가서고, 누경은 그럴수록 뒤로 물러 선다. 시간이 흐르고 만남이 잦아져도 단순히 편하다는 느낌 뿐 이성으로서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왠지 사연이 많아 보이는 여자, ’누경’. 그녀가 왜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는지 한껏 궁금해지려던 찰라 그녀의 숨겨둔 일기장이 펼쳐지면서 ’누경’의 과거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누경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사랑이 있었다. 상대는 누경의 외갓집 육촌오빠 뻘 되는 ’서강주’였다. 누경보다 스무살 쯤 위였고, 군복무할 무렵 누경의 집에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는 누경이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유부남이었다. 사춘기 소녀의 풋사랑은 그 사람을 동경하게 만들었고 종국에는 금기의 사랑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에 대한 마음이 들끓던 무렵에는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었으나, 서른을 넘긴 누경은 쉰을 넘긴 그를 편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방심하던 사이 두 사람은 깊은 관계가 되고 만다. 둘의 사랑은 두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불륜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묘사하는 전경린 작가의 시선은 사랑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 오랫동안 몰래 감추어온 사랑이 드디어 제 빛을 발할 때 얼마나 오묘하고 아름다운지 감각적인 언어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누경과 서강주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빠졌을 때의 흥분과 설렘, 행복감, 기다림, 불안 등 시시때때 변화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를 ’짐’이라 여기는 서강주는 결코 가정을 포기할 위인이 못 되고, 누경도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것 쯤은 알고 있다. 애시당초 이 두 사람의 결말은 ’이별’이라고 정해져 있었다. 다만 그 기간을 유예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햇빛이 닿으면 이내 녹아 사라질 눈꽃이라니, 이 세상에는 왜 이런 환(幻)이 있는 것일까.

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내일이 있고, 왜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이룰 것 없이 자리를 적시며 사라져갈 이런 사랑이 있는 것일까.      (p.146)

 

누경도 자신들의 사랑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양지바른 곳에서 그들의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눈꽃이었고, 조금만 강한 충격을 가해도 쉽게 깨져 버리는 유리와도 같았다. 그 약해 빠진 사랑을 위해 그녀는 1200도 고온에서 유리를 녹이듯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녹여 그와의 단단한 사랑의 결정체를 만드려고 노력했던 셈이다. 그것이 ’사랑의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그 노력으로도 두 사람에게 함께할 미래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누경은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깨트려 버린다. 그럼으로써 그녀에게는 또 다시 날카롭게 베인 상처가 남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유리는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소재로 등장한다. 열여섯 살의 누경이 서강주의 결혼식을 보고 돌아온 날, 풀밭에서 몹쓸 짓을 당할 때 그녀의 목에는 날카로운 유리가 겨눠져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을 애써 묻어두려는 그녀인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리공예가가 되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과거 자신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그 날카로운 흉기를 이제는 직접 뜨거운 불에 녹이고 다듬어서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탄생시키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자체가 그녀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또한 유리는 사랑과도 닮은꼴이었다. 뜨거운 감정의 불길 속에서는 말랑말랑하지만, 감정이 식어버리면 딱딱하게 굳어져 쉽게 깨어진다. 그러다 다시 불길을 가하면 즉 새로운 사랑을 하면 깨어진 조각도 다시 붙일 수 있는 액체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전경린 작가만의 은유와 상징적 언어들이 참 좋다.

 

마지막에 작가는 누경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인서’의 입을 빌려 들려준다. "세 노르말(c’est normal)"이란 불어인데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굳이 등장시킨 이유는 누경이 "세 노르말"을 외치며 다시 씩씩하게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긴 당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경이 마지막에 남긴 ’풀밭 위의 식사’를 꿈꾸는 편지를 보면, 이미 작가의 그 바람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나 또한 작가와 누경의 바람처럼 그녀의 사랑이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