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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 규칙의 중대한 실수는 누가 벌할 것인가!

by 푸른바람꽃 2010. 3. 26.

 

 

평소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범죄 스릴러 영화도 좋아한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콘텐츠의 소비가 아닌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그 작품들과 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숨겨 놓은 반전이나 범인을 먼저 찾아내는 게임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나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범인을 쫓는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내가 패자가 될수록 작품의 재미는 더 큰 법이다. 최근 들어서는 주로 일본의 추리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그 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내가 가장 재밌게 읽는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최고의 트릭'이라고 극찬한 <프리즌 트릭>은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서는 산만한 사건 전개 방식때문에 이 책의 중심 사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처럼 '교도소 밀실 살인 사건의 트릭'이다. 그러나 이 밀실 살인 사건의 배경에는 과거에 있었던 현직 의원과 시장의 비리, 교통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 매스컴의 경솔한 보도행태, 헌법 39조 일사부재리 원칙의 맹점, 한 남자의 광적인 스토킹 등이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교도소 밀실 살인 사건은 수면 위로 보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수면 아래 감추어진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모든 일이 이 사건의 배후가 된다.

 

중심 사건만 놓고 보면 교도소 밀실 살인 사건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건의 피의자 자체가 이 작품의 멋진 트릭이었다. 그러나 이 트릭이 밝혀진 다음부터는 사건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 피의자를 쫓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진짜 범인과 그의 범행 동기가 너무도 쉽게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은 거듭 발생하지만 그 사건에도 딱히 긴장감은 없었다. 게다가 뚜렷한 동기도 없이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 외적인 일들이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범인이 범행을 자백하는 수기를 통해 사건 정황이 모두 밝혀지면서 범인도 모르는 또 다른 범인이 있었음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반전 또한 범인의 자백 이전에 약간의 복선으로 이미 깨달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정작 궁금한 것은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다케다가 남긴 독백처럼 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프리즌 트릭>을 읽으면서 나는 몇 편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우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사건의 직간접적인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와 '응징'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와 '용서는 없다'였다.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죄인을 용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법의 심판조차 미약하다면 누구라도 직접 죄를 응징하고 싶을 것이다. 죄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를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두 작품을 봤던 기억때문에 <프리즌 트릭>의 주인공이 심적으로 겪었을 혼란과 분노, 복수 등을 이해하기 수월했던 것 같다. 그리고 <프리즌 트릭>의 원제이기도 한 <39조의 과실>, 즉 일사부래리 원칙에 관한 영화 '더블 크라임'이란 작품도 생각났다. 1999년 작인데 당시 꽤 재밌게 본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는 일사부재리의 맹점을 자신의 복수에 역으로 이용했지만, <프리즌 트릭>에서는 헌법 39조에 따라 한 번 내려진 판결에 대해서는 다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원칙때문에 교통사고로 이미 복역중인 죄인에게 다시 살인의 죄를 다시 물을 수 없었던 피해자 가족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찾아 읽게 했던 도입부의 의미심장한 구절이 하나 있었다.

 

교도소 규칙에 실용성을 따지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규칙은 지키는 데 의미가 있다.  p.10

 

그러나 지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이 규칙이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면, 과연 그 실수는 누가 벌하고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미국 등 대다수의 나라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다. 이 법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법이든 완벽할 수는 없으니, 최소한 법의 맹점이 있고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법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교도소 밀실 살인 사건이었지만 이 작품이 이야기한 것은 법과 질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