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러
|
그동안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많은 글귀를 봐 왔지만, <더 미러>만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은 없었다.
"32년 동안 영미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 "미치도록 아름다워서 훔칠 수밖에 없는 거울이야기"!
대관절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기에 32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책을 탐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얼른 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도입부를 조금 읽고 나자 나는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더 미러>는 책에서 등장했던 의문의 거울처럼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말할 것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울'이 있다. <더 미러>는 이 신비의 거울로 인해 각자의 결혼식 전날 동시에 영혼이 뒤바뀐 할머니 브랜디와 손녀 샤이, 그리고 브랜디의 딸이자 샤이의 엄마인 레이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시간여행이나 영혼이 바뀌는 내용은 종종 만나왔기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가족끼리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혼이 뒤바뀐 경우는 처음이었다. 1970년대 현재의 시간에서 아흔 여덟살의 브랜디와 스무살의 샤이는 공존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샤이는 다음날 결혼식을 앞두고 있지만 약혼자인 마넥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결혼에 확신이 없어 불안해 했다. 그 때 자신의 방에 놓인 골동품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 브랜디 할머니가 스무살 때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았다는 '웨딩 거울'이었다. 레이첼은 브랜디의 면사포와 함께 이 거울도 딸에게 물려주려고 다락방에서 꺼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 여인의 운명을 바꿔버린 사건의 시초가 되고 말았다.
부지불식간에 영혼이 바껴버린 샤이는 78년 전 20살의 브랜디 몸으로 깨어나고, 반대로 20살의 브랜디는 현재의 샤이 몸으로 깨어난다. 과거와 현재에 걸친 영혼의 이동은 두 여자에게 시간여행과 다름 없었고, 달라진 외모와 주변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혼란을 가져온다. 더군다나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 몸이 바껴버리고 말았으니 그로 인한 가족관계도 복잡하게 얽히고 만다. 샤이의 입장에서는 할머니, 엄마, 자신으로 이어진 3대의 연결고리에서 처음과 끝이 뒤집히는 바람에 자신이 낳게 될 딸이 곧 그녀의 엄마인 레이첼이 되는 것이다. 미래로 떨어진 브랜디 역시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아흔 여덟살이 된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의 문화적 충격으로 놀랄 새도 없이 자신의 몸에 찾아온 변화는 그녀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미러>는 이 흥미진진하고 신비로운 시간 여행에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가미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게 한다. 하룻밤 사이에 낯선 세상으로 던져진 두 여인이 그들의 달라진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척해 나가는지 저자는 그것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그녀들의 삶과 사랑 뿐만 아니라 모녀로 이어져 있는 세 여인의 미묘한 관계 변화와 그에 따른 심리도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엄마는 왜 자신을 안아주기보다 자신에게 기대려 할까 생각했다. 레이첼은 그것이 불편했다.
"엄마는 왜 내 이름을 안 불러요?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라면서요. 작년엔 꼬맹이라더니, 이젠 야옹이야?"
"음... 엄마들은 다 그래."
그녀가 레이첼의 뺨에 키스했다. 하지만 또 눈빛이 이상해졌다.
정말 엄마들은 다 그럴까? 어느 누구도 브랜디가 미쳤다고 혹은 마녀라고 레이첼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엄마들과 확실히 '달랐고', 레이첼도 그 사실을 알았다. (p.268)
저자는 <더 미러>에서 '여자'를 말하고 있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19세기의 여자,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도 쉽게 여자로서의 운명을 거스르진 못했던 20세기의 여자, 두 여자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딸이자 엄마이고 아내로서 살아온 또 다른 여자... 이렇게 세 여자의 삶의 모습에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여자로서의 일생을 엿볼 수 있었다. 뒤바뀐 운명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샤이와 브랜디는 다행히 각자의 인생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행복, 사랑을 발견한다. 분명 거울의 장난에 희생양이 된 것은 샤이와 브랜디였으나 나를 가장 안타깝게 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던 레이첼이었다. 과거 자신의 엄마였던 사람을 직접 낳고 길러야 했던 샤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순수하게 딸로서 레이첼을 대하지 못했던 샤이로 인해 엄마의 깊은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레이첼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현재에서 레이첼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실종된 딸이 결국 그녀가 평생을 엄마로 믿고 살았던 브랜디, 최근 땅에 묻은 바로 그 죽은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레이첼의 찢긴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 아팠다. 따라서 누구보다 잔인하게 거울에 희생된 사람은 레이첼, 그녀였다.
책의 내용 구성은 손녀인 샤이의 이야기가 우선 등장하고, 다음으로 그녀의 엄마이자 브랜디의 딸인 레이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인 브랜디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 샤이의 이야기는 외국의 역사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19세기에서 펼쳐지는 20세기 여자의 당돌한 사랑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샤이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브랜디가 궁금했다. 차라리 책의 내용 구성이 샤이와 브랜디를 교차하며 동시에 보여주었더라면 그런 궁금증도 즉시 해결됐을텐데,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라 인내심을 갖고 차례대로 읽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샤이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말년까지 모두 지켜보고 나면 이야기는 그녀의 딸이 되어 버린 엄마 레이첼의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그렇게 레이첼의 과거에서 현재를 거치고 나서야 궁금해 마지않던 78년 전 브랜디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형식인 것이다. 따라서 레이첼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샤이와 브랜디의 이야기는 차라리 처음부터 앞과 뒤를 번갈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만일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나는 이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볼 생각이다.
또한 <더 미러>에 대해 알아보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오기와라 히로시의 <타임슬립>이란 작품도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다. <타임슬립> 역시 시공간을 초월해 영혼이 뒤바뀐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더 미러>처럼 복잡한 가족관계가 얽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戰時) 상황을 배경으로 영혼이 바뀐 두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았다. 아마도 <더 미러>와 비교해 읽는다면 각각의 작품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 된다.
'冊 it n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0) | 2010.04.06 |
---|---|
테헤란의 지붕 - 낯선 곳에서 낯익은 청춘들을 만나다 (0) | 2010.04.01 |
섬진강 시인이 전하는 동심의 세계 (0) | 2010.03.30 |
프리즌 트릭 - 규칙의 중대한 실수는 누가 벌할 것인가! (0) | 2010.03.26 |
풀밭 위의 식사 - 날카롭게 베인 상처를 치유하다 (0) | 201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