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서브 로사. 3: 카틸리나의 수수깨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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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3>권으로 고르디아누스와 재회했다. 2권을 덮은 후로 내게는 몇 달의 시간이 흐른 것에 불과했으나 '로마 서브 로사' 속의 시간은 무려 6년이나 흐른 뒤였다. 그래서 고르디아누스의 신변에는 꽤 많은 변화가 찾아와 있었다. 우선 2권 말미에서 아내가 출산한 딸 디아니와 양아들 메토를 동시에 얻었던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로마를 떠나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가 그에게 유언으로 남긴 시골 농장에 정착해 있었다. 그리고 말문이 트였던 그의 맏아들 에코는 결혼하여 로마에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고, 양아들 메토는 열여섯살로 성인식을 앞두고 있었으며, 갓난쟁이였던 디아나도 여섯살 소녀로 자라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는 동안 고르디아누스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십대 중반의 가장으로 변모했다. 로마 제일의 사립 탐정 '더듬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가족의 안전과 생계를 책임지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 대신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위험천만한 로마를 떠나 가족들과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누리고자 결심한 순간 고르디아누스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전원생활도 그리 평탄해 보이진 않았다.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땅이 외부인에게 상속된 것에 앙심을 품은 그의 이웃이자 클라우디우스 가문 사람들이 그를 대놓고 냉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과의 불화는 농장을 운영하는데도 걸림돌이 되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설상가상으로 어느날 갑자기 키케로와 정적관계인 카틸리나를 그의 집에 잠시 머물게 해 주라는 키케로의 부탁을 받게 된다. 키케로의 부탁을 대신 전하러 왔던 카일리우스가 고르디아누스에게 카틸리나의 수수께끼- '몸뚱이 둘이 보이는데, 하나는 마르고 쇠약하지만 머리가 크다. 다른 하는 크고 튼튼하지만 머리가 없다.' (p.82) -를 내주며 키케로의 부탁을 승낙한다면 '머리 없는 몸뚱이'라는 암호를 전하라고 한다.
하필 정적을 그의 집에 머물게 하라는 키케로의 부탁은 그의 계략이 틀림없을 것 같아 고르디아누스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가 두려워 그 부탁을 거절하려했다. 그러나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그의 가족을 위협하듯 마굿간에 머리가 없는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는 할 수 없이 카틸리나의 방문을 허락한다. 처음에는 이 책의 부제인 카틸리나의 수수께끼가 '머리 없는 몸뚱이' 시체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용이 진행됨에 따라 이 수수께끼의 답이 풀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게 된다. 카틸리나의 수수께끼는 당시 로마의 부패한 원로원과 키케로를 비아냥 거린 것이었다. 고르디아누스의 집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머리가 잘린 시체들의 사건과 카틸리나의 사건은 묘하게 맞물려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지만, 사실 둘 사이는 별개의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인데 밝혀진 사건의 전모는 전혀 다른 범인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이 사건의 전모를 고르디아누스조차도 짐작 못하게 함으로써 카틸리나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이 이번 <로마 서브 로사 3>의 스토리가 가진 장점이다.
<로마 서브 로사 2>권에서는 로마의 노예 문제에 대해 다뤘다면 <로마 서브 로사 3>은 로마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키케로와 카틸리나가 집정관 선거에서 맞붙게 되면서 정치인들의 중상모략과 음모, 비리 등이 드러나는데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카틸리나에 대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책에서 만난 카틸리나는 매력적인 남자이자 적어도 키케로 보다는 나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통설로는 그가 거듭 선거에 낙선하여 국가전복의 음모를 꾸미다 전쟁중 사망한 정치인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스티븐 세일러는 그 점에 대해 '저자의 말'에서 현대의 많은 역사가들이 카틸리나에 대한 부정적 초상이 그의 적들이 유포한 유언비어인 줄 알면서도 액면 그대로 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카틸리나는 그를 제대로 안다면 충분히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통설을 뒤집는 카틸리나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보여 주었다. 물론 카틸리나에 관한 소문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역사는 되풀이 된다.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이 지닌 본성은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탐욕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도 발견하게 되지만, 지금도 직접 겪고 있지 않은가!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정치인들은 그 사실을 너무도 쉽게 망각하고 만다. 그래서 결국 마르고 쇠약하지만 머리만 큰 정치인들과 크고 튼튼하지만 머리가 없는 대중으로 양분된 세상을 살고 있는건 아닐런지... 고르디아누스의 부성애가 돋보였던 이번 작품은 복잡한 살인사건이 중심에 있지는 않았어도 카틸리나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당시의 로마 정치를 엿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의문의 시체 사건이 너무 느닷없이 범인을 찾고 해결되는 점만큼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3편의 에필로그에서는 또 다시 세월이 흘렀고, 고르디아누스는 나이를 먹었다. 아직 남은 시리즈가 더 많은데 그가 너무 빨리 노쇠해지는 것 같아 괜한 걱정이 앞서지만, 4권에서 새로운 사건으로 만나게 될 고르디아누스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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