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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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은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 뿐만 아니라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혼자라고 해서 남들이 뭐라는 것도 아닌데 괜히 청승맞아 보일까봐 주저하게 됐다. 그러나 요즘에는 식당들마다 1인용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놓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혼자 식사하는 것이 보편화 되고 있는 추세인 가 보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역시 무역업을 하는 싱글의 셀러리맨으로서 혼자 식사해야 하는 때가 많다. 무역업의 특성상 그는 외근이 잦고 그럴 때마다 그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 다양한 도쿄 식당들의 먹거리들이 이 작품의 주요 소재들이다. 평소 일식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먹는 일식은 한식과는 다른 특유의 맛과 향이 있어 별미로 제 격이다. 또한 비슷한 문화권의 나라여서 그런지 우리 입맛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기에도 좋은 음식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소개된 식당들을 직접 찾아가서 음식을 먹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고독한 미식가>를 완성했다. 비록 15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한국판 출간에 맞춰 저자가 15년 전의 그곳들을 다시 취재하여 내용을 수정, 보완했다고 한다. 따라서 식당의 메뉴나 가격, 상차림 등은 현재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가 소개하는 식당들이 그냥 봐서는 지나치기 십상인 매우 평범한 곳들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맛집을 정리해 놓은 책에 등장하는 곳은 이미 그 일대에서 꽤 유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고독한 미식가>의 음식점들은 언제라도 그곳을 편하게 찾아 맛있는 음식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곳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의 음식 맛이 여느 맛집보다 뒤진다면 저자가 자신있게 책에 소개하지 않았을테니 그 점은 작가의 안목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라서 자연스럽게 <식객>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는 식객만큼 내용의 깊이가 있다거나 상세하지는 않았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도 18가지나 되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으므로 그 내용은 간단히 방문한 식당과 거기서 먹었던 메뉴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주석으로 일본 음식 명칭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긴한데 그래도 일본 음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메뉴들을 쉽게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 그래도 지글지글 요리되는 음식들의 모습이나 주인공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내 입맛을 다셨다. 결국에는 반쯤 읽고 잠시 쉬는 동안 주전부리로 허기를 달랜 후 마저 읽어야 했다.
짐작컨데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 책을 가지고 도쿄 여행을 가서 직접 활용해 봐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소개한 모든 곳을 방문할 수 없다면 자신의 입맛에 맞을 것 같은 몇 곳이라도 방문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현지 음식 맛보기에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던 이유도 언젠가 될 지 모를 나의 도쿄 여행을 위해서였다. 그 때가 되면 <고독한 미식가>의 특별부록으로 함께 받은 소책자를 꼭 지참해야겠다. 본책과 별도로 소책자 형태의 얇은 부록이 있는데 이 부록에는 보다 자세한 식당들의 소개와 마지막에는 식당의 이름, 주소, 연락처 및 휴일과 영업시간까지 간단히 기제되어 있다. 여기에 찾아가는 방법이나 약도까지 소개되어 있었다면 완벽한 식당 가이드북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은 빠져 있다.
<고독한 미식가>는 만화책이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유용한 정보까지 담긴 일거양득의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을 때는 미리 배불리 먹어두거나 간단한 먹거리를 곁에 두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 도중에 저절로 먹을 것을 찾아 주방을 어슬렁 거려야 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가 음식의 맛을 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혼자 모험을 즐기듯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는 기쁨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고독한 미식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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