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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긴 여행과도 같은 우리들의 세상살이

by 푸른바람꽃 2010. 5. 14.

자전거 다큐 여행

저자 한상우  
출판사 북노마드   발간일 2010.05.14
책소개 자전거를 타고 세상과 교감하다!자전거를 타고 세상과 교감한 이야기를 담아낸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

 

지금도 내가 처음 두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앞으로 차고 나갔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음에도 바람을 가르고 쌩쌩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났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 자전거를 탄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나와 다르게 지인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의 여행기를 듣고, 사진을 보며 막연히 나도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자전거 여행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나름 자전거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내게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거 다큐 여행>이란 책은 자전거 여행 선배의 알찬 조언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예상과 달리 그가 여행에서 보게 된 풍경을 찍은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감흥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것이었다. 비록 내 예상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이 책은 "자전거 다큐 여행"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풍경 속에서도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저자의 감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접이식 자전거에 의지해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그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 만큼 여행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은 그것이 보여주는 풍경보다 늘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여섯 개의 sce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이 scene을 나눈 기준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았다. 지역별 구분도 아니고, 딱히 내용을 하나로 묶는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데 그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여 있어도 좋고,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이야기는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사진과 글도 물론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자의 따뜻한 생각과 감성이었다. 특히 부산 오륙도의 SK View 아파트 이야기는 꽤 놀라웠다. 그 동네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 광고를 스크랩할 때 보았던 오륙도 SK View의 전면 광고는 대기업 분양광고답게 눈길을 사로잡는 헤드라인과 시원한 디자인 컨셉으로 소비자를 유혹했었다. 그 광고를 보며 그곳에 세워질 거대 주거 단지만을 상상했지, 삶의 터전을 뺏기게 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용호동은 나병으로 아픈 주민들의 집성촌이었다.

부산의 땅끝으로 이들을 내몰 땐 언제고, 이젠 오륙도가 앞바다에 떠 있는, 운치 있는 풍광의 자리를 내놓으란다.

용호동 판잣집의 낡은 창문 어디에서든 오륙도는 훤히 보였다.    p. 20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그들의 아픈 설움이 전해지자 냉혹한 자본주의 현실에 적잖이 화가 났다. '합법'이라는 명분 아래 누군가에겐 전부인 집을 허물고 삶을 빼앗는 세상의 비정함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거 다큐 여행>은 이처럼 우리들의 세상살이를 이야기 한다. 자연에서도 삶을 이야기하고, 여행에서 만난 문화재들에게서는 훼손의 상흔을 따끔하게 꾸짖는다. 그래서 '다큐 여행'이란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저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저자와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고 나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했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저자의 능력이 부러웠다. 책의 프롤로그의 연장선인 것 같은 에필로그에서 저자 한상우는 달콤한 사랑고백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그 주인공인 '너'란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분명 행복해 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도 느리지만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가 사랑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여행의 경로나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만 담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행으로 더욱 넓어진 시야와 한 뼘쯤 자란 마음을 보여준 이 책은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