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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디스토피아

by 푸른바람꽃 2010. 5. 17.

싱커

저자 배미주  
출판사 창비   발간일 2010.05.14
책소개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잠들었던 아마존이 깨어난다!제3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배미주의 장편소설...

 

근래 들어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인류의 미래상을 그린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올 초 개봉했던 영화 '아바타'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훼손되어 가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다름 없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으며,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제3의 장소에서도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은 꼭 현실이 되었으면 좋을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은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완득이>와 <위저드 베이커리>에 이어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싱커> 역시 미래의 어느날을 그리고 있는데, 그 내용이나 주요 설정이 영화 '아바타'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시티 오브 엠버'라는 작품과 꽤 닮은 구석이 많았다.   
 
<싱커>가 보여준 미래는 겉으로 보기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상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됐으나 국민들은 철저하게 계급화 되었으며, 그 사회에서 개인은 조직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과 같았다. 또한 개인의 의지와 생각 등은 점점 말살되고 시스템에서 주입하는대로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인류가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게 된 것에 반해 심각한 노령화 사회가 되어 청년층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는 극히 제한되었다. 특히 이 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연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3차 세계대전과 심각한 바이러스로 인해 지상의 세계가 멸망한 후 인류는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고 그곳이 <싱커>의 무대다. 미래의 지하도시라는 점과 그 지하도시의 청소년들이 자연(빛)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화 '시티 오브 엠버'와 흡사하다. 주인공 미마와 친구들은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싱커'라는 게임을 통해 지하도시의 인공 자연지대인 신아마존의 생물들에게 '동조'할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연을 몸소 경험하며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생명력과 본인들의 잠재된 에너지를 발견한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하도시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싱커'라는 게임이 시스템 운영에 장애가 되는 바이러스와 다름 없었다. 따라서 '싱커'를 통해 자연을 지키려고 하는 아이들과 그것을 억압하려는 지배계급의 대립과 갈등이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내용은 기대했던 것만큼 새롭지 않아서 그 점이 가장 아쉬웠다. 저자가 풀어놓은 유전학이나 생물학과 관련된 과학적 내용 등은 전문적인 지식이 바탕이 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싱커>의 큰 줄기를 이루는 중심 내용은 앞서 이야기 했던 두 편의 영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으며, <싱커>의 새로운 시도와 상상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 책이 보여주는 결말마저도 영화 '시티 오브 엠버'와 흡사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장면들이 겹쳐졌다. <싱커>와 같은 SF 소설에서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기상천외한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편의 SF 영화와 중요한 몇 가지의 비슷한 설정때문에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창의적인 느낌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말을 실감케 했다. 만일 내가 두 편의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지만, 훌륭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