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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 우주의 시작,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험

by 푸른바람꽃 2010. 5. 19.

낮. 1

저자 마크 레비  역자 강미란  원저자 Levy, Marc  
출판사 열림원   발간일 2010.05.10
책소개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프랑스 태생의 소설가 마크 레비가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내는 『낮』...

마크 레비. 꽤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내게는 낯선 존재였다. 그런데 그의 신작 <낮>과의 만남을 앞두고 그에 대해 좀 알아보니 나는 이미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났음을 알게 됐다. '저스트 라이크 헤븐'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했던 일종의 '사랑과 영혼'과 비슷한 내용의 로맨스 영화였다. 그러자 부쩍 저자에 대한 친근감이 들면서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모험에 흥쾌히 동참하게 됐다.

 

이 작품의 서술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아드리안'은 어린 시절부터 우주의 기원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었겠지만, 결국 그것이 그의 직업이자 꿈이 되어 천체물리학자로서 별자리를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한 때 그와 연인 관계였던 키이라는 고고학자로서 태초 인류의 조상을 발견하는 탐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기원이라는 이 주제들은 어쩐지 하나로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연구를 위해  참여하게 된 학술대회에서 운명처럼 재회하게 된다. 다시 만난 연인들의 짧은 만남 후 키이라는 아드리안에게 의문의 목걸이를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두 주인공의 모험이 시작됐다.

 

<낮>을 읽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었던 <보이니치 코드>라는 작품을 자꾸 떠올리게 됐다. 두 작품 모두 천체물리학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내가 <보이니치 코드>에서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몇 가지 단점들을 <낮>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비교적 읽기 쉽고 흥미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여 주인공들 사이에는 약간의 로맨스가 있고, 주인공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미지의 존재들도 있으며, 그런 위험을 불사하고서라도 찾고자 하는 그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이 가득하다. 따라서 이 책의 홍보 내용에도 언급되고 있듯이 소설 <낮>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어드벤처 무비들과 내용이나 분위기에 있어서 매우 흡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드벤처 무비의 재미는 시종일관 터지는 사건의 연속, 다시 말해서 극의 속도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낮>의 경우 1권에서는 내내 사건의 변두리만 맴돌며 뜸을 들이는 형국이다. 주인공들의 관계도 그렇고 사건 역시 읽는 사람을 단번에 사로잡는 힘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한 마디로 서론이 너무 길었다고나 할까? 이 후 2권에 접어들어서야 본격적인 목걸이의 비밀 파헤치기에 돌입하고, 이야기도 본 궤도에 오른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영화적 재미를 기대한 탓인지 몰라도 기대만큼 이 작품에 만족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 작품에서 중심 사건으로 다루는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흥미를 자극할 만 했으나 사건의 개연성 부분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주인공이 곤경에 처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어드벤처 장르의 핵심이긴 하지만, 아무리 음모때문이라고는 해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이야기를 기대했기에 짜여진 각본대로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것을 반복하여 지켜보는 것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은 결말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마지막 사건과 그 결과였다. 그런데 저자가 극적 반전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그 결말에 나는 오히려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것마저도 너무 꾸며진 소설 같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 작품의 후속작인 <밤>을 염두에 둔 설정일 수도 있지만...

 

어짜피 소설이나 영화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인 것은 똑같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일을 꿈꾸고, 정작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런 거짓말 같은 현실을 꿈꾼다. 그런 점에 있어 <낮>은 그저 잘 쓰여진 '소설' 같은 모험담과 같았다. 차라리 너무 잘 짜여진 거짓말이라서 이 거짓말이 마치 진짜 같았다면  아마도 이 작품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이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학자들의 노력과 그 발견의 내용이 우리 삶에 미치게 될 영향 등에 대한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끝인 것 같지 않은 이 책의 결말이 과연 다시 이어질까? 후속작 <밤>에서도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을 다시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을 능가하는 작품으로 재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