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양장) 이사카 고타로(Isaka Kotaro), 민경욱 | 랜덤하우스 | 20110607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재밌게 읽어온 나로서는 신작 소식에 무조건 반가웠다. 그의 책,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섭렵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또 어떤 기발한 설정으로 사회 현실 혹은 모순을 끄집어 낼까 궁금했다. 출판사 측의 책소개에 따르면 <바이바이, 블랙버드>는 다자이 오사무의 <굿바이> 속편에 해당한다고 한다. "<굿바이>는 여러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어떤 여성과 만나면서 과거 여성들에게 차례로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 (p.390)라고 하는데 <굿바이>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라 선입견 없이 <바이바이, 블랙버드>를 만나보기로 했다.
일단 <바이바이, 블랙버드>의 상황 설정은 <굿바이>의 요약된 설명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다섯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고 있던 호시노는 마유미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를 만난 후 '그 버스'의 강제 탑승을 선고 받는다. 어린시절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무작정 기다리며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 호시노는 급기야 마유미에게 자신의 여자친구들과 이별할 수 있게 2주의 말미를 달라고 간청한다. 그 날부터 2주간 호시노와 마유미는 호시노의 여자친구들과 하나씩 만나 그만 헤어지자고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이별의 이유는 말도 안되게 마유미와의 결혼이다.
이 같은 호시노와 다섯 여자의 이별은 옴니버스 소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매번 이별에 앞서 이야기의 시작은 호시노와 각각의 여성들이 어떻게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 회상이다. 다섯 명의 여자들은 마치 운명처럼 호시노를 만나고 호시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왜 여자들이 호시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다섯 여자들과의 이별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통상 이런 바람둥이를 두둔할 여자가 어디있겠나 싶지만 정작 호시노의 언행을 보면 그가 밉지만은 않으니 이상할 노릇이다. 다섯 여자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그의 여러 여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아도 여자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호시노가 자신을 만나는 동안만큼은 진심이었음을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시노는 이별의 순간에도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라도 그녀들이 불행하지 않도록 끝까지 상대방을 지키고 배려하는 모습은 바람둥이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상처입고 괴로워 할수록 즐거워하던 마유미도 호시노와 함께 다니는 2주간 점점 변해간다. 그녀의 사전에 '배려'라는 단어는 이미 검게 칠해 죽인지 오래인데 종국에 가서는 '돕다'는 단어가 살아있는 사전을 찾아 헤매니 말이다. <바이바이, 블랙버드>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호시노와 마유미 콤비와 함께한 이별 여행은 때론 유쾌하고 때론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호시노처럼 나 역시 '죽음'이라 상상했던 '그 버스'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과연 호시노를 태운 녹색버스는 어디로 향할지 여운을 남겼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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