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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by 푸른바람꽃 2011. 8. 15.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 은행나무 | 201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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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문학상의 영광을 차지한 작품은 강희진 작가의 <유령>이었다. 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을 때면 기성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과 독특한 소재 등으로 인해 확실히 새롭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껏 읽은 여러 문학상 수상작품들 가운데서도 이번에 읽은 <유령>은 새롭다 못해 낯섦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나는 '리니지'를 전혀 모르니까.

 

<유령>을 재밌게 읽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전 학습이 필요했다. 온라인 게임의 신화로 불리는 '리니지'가 그것이다. 평소 게임이라면 팜프렌지나 하는 정도인 내게 리니지는 오며가며 배너 광고로 이미지만 힐끗 본 게 전부였다. 그 게임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리니지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유령>에서는 '리니지2'의 세상이 책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등장인물들에게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곳이다.  

 

주인공 '나(하림)'는 탈북 청년이다. 남한에서 나름 대학을 나왔고 연기를 전공해 단역 배우로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경력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PC방에서 게임에 미쳐있고, 밤에는 취객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해 그 벌이로 먹고 사는 비루한 인생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비롯해 탈북자들이 모여 사는 백석공원의 백석 시비 앞에서 사람의 안구가 올려진 제삿상이 발견되고, 얼마 후에는 손가락 두 개가 잘린 사람의 손목이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나'는 살인 및 사체 유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경찰들의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이 살인 사건이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한다. 여기서 나처럼 '리니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난관에 부딪힌다. 그래서 "바츠 해방전쟁"이 무엇인지, '리니지'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책을 중반 정도까지 읽고 나서야 대강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바츠 해방전쟁"은 게임계의 전설적인 사건이었다.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약자들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했던 그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그 혁명을 이끌었던 전사가 주인공 '나'이다. 현실에서는 백수에 게임 폐인에 불과한 그가 게임 속에서는 혈맹의 군주이고 혁명의 영웅인 이 모습에서 분열된 자아의 단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읽고 친구 '주철'이 자신이라 믿는 '나'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탈북자들도 북한을 탈출하며 저마다 자기자신을 버리고 온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지우고 싶은 북한에서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을 수 없는 멍에와 같았다. 잊고 싶지만 그리운 기억, 죽기 싫어 떠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돌아가고 싶은 곳 탈북자들의 이러한 정서가 <유령>에서는 현실부적은자들의 인생을 통해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에 이르러 범인은 조금 시시하게 밝혀진다. 범인의 유서로 공개되는 사건의 전말, 그 사건의 진상이 보여주는 탈북한 일가의 비극과 허무함은 맥없이 풀린 이 사건처럼 공허함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게임은 진행중이고, 혁명 전사 '쿠사나기'의 봉인은 풀렸으니까. 끝으로 그에게는 꼭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게임과 현실을 오가며 '하림'이자 '주철', '쿠사나기'인 탈북 청년으로.

 

자신을 잃어버린채 '유령'처럼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현실을 새롭게 조명한 <유령>은 '리니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읽기보다는 이 게임에 대해 미리 알고 읽으면 더 흥미로울 작품이다. 과연 심사위원들은 "바츠 해방전쟁"을 알고 있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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