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冊 it now

비스트

by 푸른바람꽃 2011. 8. 20.
비스트 비스트
이승재, 버리에 헬스트럼(Borge Hellstrom), 안데슈 루슬룬드(Anders Roslund) | 검은숲 | 20110804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인면수심(人面獸心). 그러나 <비스트>에 등장하는 '벤트 룬드'를 설명하기에는 이 말로는 부족한 듯 하다. 그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 행각들은 짐승들조차 저지르지 않을 법한 일이다. 그의 범행 대상은 10세 미만의 소녀들 심지어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까지 예외가 아니다. 치밀하게 관찰하고 계획한 후 아이들은 유인해 성폭행과 살인을 일삼는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스웨덴은 사형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국가로서 룬드는 죽음 대신 정신과 치료와 교도소 수감생활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교도소로 송치되던 중 탈옥에 성공하고 만다. 

 

룬드의 범행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서문을 여는 <비스트>는 드러내 놓고 스웨덴 사법제도의 한계와 교도당국 및 경찰 수사의 허술함을 꼬집는다. 그리고 탈옥 후 룬드가 한 일은 다섯 살의 소녀 마리를 그가 저지른 범행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게 성폭행 후 살해하는 것이었다. 이혼 후 그에게 피붙이란 하나 뿐인 딸 마리가 전부였던 프레드리크. 그런 그가 방금 전 마리를 데려다 주러 유치원 앞을 오가며 마주친 남자가 희대의 소아성범죄자인 룬드임을 깨닫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프레드리크를 덮친다.

 

햇살보다 환하게 웃던 아이가 상처 가득한 몸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부검대 위에 누워 있다.

 

"아이는 없다.

마리는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딸은 더 이상 존재하는 않는다."  P.244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결코 해서는 안되는 짓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룬드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물며 수많은 가능성들로 가득한 내일을 살아야 할 이 아이에게 그는 미래를 앗아갔고, 그 부모에게는 평생 암흑 속을 살아야 하는 형벌까지 내렸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가 말이다. 모두가 이렇게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무렵 프레드리크는 결심을 한다. 법이 그를 죽일 수 없고, 교도당국이 그를 온전히 가둬둘 수 없으며, 경찰이 한시 바삐 그를 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의 손으로 룬드를 찾아 처단해 제2의 마리와 같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이야기가 이 정도 전개되자 앞으로 프레드리크가 어떤 방법으로 룬드에게 복수를 가할 지 은근히 기대감을 갖고 읽어 나가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비스트>는 독자들에게 직구가 아닌 변화구를 던지며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당한 만큼 되갚아 주리라 믿었던 프레드리크의 복수는 두 발의 총격으로 마무리 되고 살인모의 및 고의 살인 혐의로 프레드리크는 재판에 회부된다. 문제는 그 이후 '탈바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게 되는 사건에 있다.

 

"법원이 집행하는 정의와 시민들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똑같은 이름의 정의가 얼마나 큰 간극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의 상징." P. 310

 

처음에는 잔인한 범죄로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의 핏빛 복수극 정도로 생각했던 <비스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중반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레드리크의 복수는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가의 법을 무시한 채 자의적인 정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죽어 마땅한 범인이었고, 그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안타까운 희생이 뒤따랐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국가의 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수긍하는 프레드리크의 복수는 결국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권까지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프레드리크의 재판을 계기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애꿎은 희생이 잇따른다.

 

무엇이 과연 옳은 것일까?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개인의 정의는 인정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가 충분히 정의 실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도 없다. 역자의 말에서처럼 법과 정의가 빠진 이 딜레마에 뾰족한 해답은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비스트>는 전반부까지는 프레드리크의 편에 서 있는 듯 보였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과연 개인의 자의적인 정의 실현이 과연 정의로운 것이었나 의문을 던진다. 결국 법이 아닌 개인에게는 그 누구의 생사여탈권도 없음을 일련의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거듭 말한다. 프레드리크에게 닥쳤던 비극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冊 it n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0) 2011.08.28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0) 2011.08.21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0) 2011.08.15
여행 아는 여자  (0) 2011.08.13
어쨌거나, 뉴욕  (0) 201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