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 예담 | 2012013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이야기꾼 천명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요근래의 일이다. 심한 감기몸살로 앓아 눕게 되어 하루 종일 죽 먹고, 약 먹고 잠드는게 전부였던 그 때, 문득 시간도 잊고 아픈 것도 잊게 해 줄 재미난 책이라도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났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한참 전에 사두었던 천명관의 <고래>였다. 천명관의 작품 중에서도 <고래>는 그야말로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설이었고 풍문을 들은 후 언젠가 읽겠다고 책꽂이에 모셔놓았는데 그게 벌써 해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한밤중 책을 펼쳐들게 된 후 나는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천명관 식 이야기에 흠뻑 빠져 단숨에 그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런 천명관이 오랜만에 브루스 리와 함께 돌아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브루스 리가 되고 싶었던 한 사내이고,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가 풀어놓는 영화에 대한 마지막 소설이라고 이라고 한다.
권 씨 집성촌인 시골 마을 '동천'을 배경으로 화자인 '나'는 다섯살 위인 '삼촌'의 인생을 '삼촌'을 대신하여 전해준다. 태어날 때부터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는 멍에를 쓰고 눈칫밥-책에서도 나오지만 실제로 눈칫밥을 준 것보다 본인의 처지를 알게된 순간 스스로가 느끼는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을 먹으면서도 '삼촌'은 영화배우 이소룡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런 이소룡의 죽음에 대한 애도로 시작된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권은 그저 평범하게 한 평생 농사꾼으로 살다 가리라 예상했던 삼촌의 굴곡진 인생을 7~80년대 시대상을 배경으로 함께 보여준다.
특출날 것 없는 외모에 말까지 더듬으며 학업 성적도 지지부진했던 '삼촌'에게 단 하나 재능이 있었던 것은 그가 이소룡을 흠모하며 매일 뒷동산에 올라 연마했던 무술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의 남다른 무예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삼촌'을 이끌고 어딘가 모자란 듯 한 '삼촌'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 서울에서 고단한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운명처럼 이소룡에 대한 열망과 가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몸부림치며 마치 이소룡의 늪에 빠진 듯 허우적 거리는 인생을 살게 된다. 이유도 없이 붙잡혀 끌려간 삼청교육대에서조차 그는 이소룡의 말을 신조로 목숨을 거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그가 이소룡이 될 수 있었던 마지막 꿈과 희망이 사라진 이후에는 그의 인생도 동네 건달로 흘러가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1권에서 이야기 하는 시대보다는 조금 더 늦게 나고 자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이야기 하는 풍물들이 잊고 지냈던 추억을 불러일으켜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퀴퀴한 냄새가 났던 실내와 벨벳으로 싸인 의자는 삐그덕 거렸지만 그 옛날 동시상영관에서 명절 때 영화 '쉬리'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연속으로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남자애들이 시도때도 없이 '아뵤~!'를 외치며 옆구리에 쌍절곤을 차고 다니던 모습도 생각났다. 또한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는 '삼촌' 못지 않게 그 시절 '삼촌' 주변 사람들의 인생역정도 인상 깊다. 사춘기 소년 '나'의 잔인한 첫 사랑은 절친한 친구 '종태'에 대한 배신과 그의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고야 말았으며, 결국 '종태'의 인생도 동네에서 주먹 좀 쓰는 건달, 그리고 전과자로 전락하고 만다.
저자의 전작 <고래>나 이번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사람의 인생 혹은 운명이란 것이 참으로 기묘하여 때로는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생명력으로 가지고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그럴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고 또 그 결과는 새로운 사건의 원인이 되어 인생이란 큰 그림의 작은 조각들이 되는 과정이 신비롭기만 하다. 과연 2권에서는 '삼촌', '나', '종태', 그리고 어쩐지 위태로워 보이는 '형'의 인생에도 어떤 변화가 몰려올지 궁금하다. 1권에서도 간간히 먼 훗날로 훌쩍 건너가 등장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어서 2권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 청춘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역시 천명관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 작성한 것입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