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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왕을 만든 여자

by 푸른바람꽃 2012. 2. 19.
왕을 만든 여자 1 왕을 만든 여자 1
신봉승 | 다산책방 |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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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잇따라 드라마들을 자체 제작하여 방영 중이다. 그 가운데 J사의 "인수대비"라는 작품도 있는데,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을 여든의 노작가 신봉승은 또 다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왕을 만든 여자>이다. 흔히 왕은 하늘이 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하늘의 도움 못지 않게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힘을 더해야 비로소 왕은 탄생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권력의 다툼 속에 희생된 안타까운 목숨이 어디 한 둘인가. 그렇지만 특히 단종의 죽음은 사람된 도리와 예를 중시하는 우리의 정서나 인정 상 동정을 금할 수 없으며, 그래서 더욱 계유정난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게 피를 흩뿌리며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세조)은 짐작컨데 평생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는 대군으로만 머물지 않고 조선의 하늘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도 왕위계승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명회이다. 한낱 궁지기에서 불과했던 그였으나 탁월한 지략으로 훗날 권력의 정점에 섰던 독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명회와 함께 계유정난의 숨은 공신이 있었으니 그는 수양대군의 맏며느리 '한씨'였다. 어린시절부터 한자와 범어까지 깨우쳤던 그녀는 학문의 깊이가 뭇 사대부 선비 못지 않았고 그런만큼 시류를 꿰뚫어 보는 안목도 남달랐다. 문종이 병으로 세상을 뜨고 단종이 즉위한 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도모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는 1권에서는 당시 조선시대의 여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한씨의 담대함이 잘 드러나 있다.  

 

책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종친으로서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한씨는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남편은 임금으로 만들고, 스스로는 중전이 되겠다는 그녀. 그러나 역사는 쉽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도원군으로 불리던 남편이 세조 즉위 후 의경세자로 봉해져 왕위계승 서열 1순위가 되었건만 스무살의 나이에 병사하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세자빈은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궁을 떠난다. 그렇게 왕좌와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12년만에 그녀는 둘째아들 잘산군(성종)을 왕위에 앉히고 그녀는 왕비를 거치지 않고서도 대비가 되는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을 몸소 보여준다. 세자였던 남편과 시아버지 세조, 시동생 예종의 죽음까지 지켜보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 한명회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동맹이었고 그녀와 한명회의 바람대로 왕위 계승 서열로 따지면 3순위였던 잘산군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궁중 부녀자들의 훈육을 위해 '내훈'이란 교육서까지 편찬하며 여성의 유교적 덕목을 중시했던 그녀와 며느리 윤비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윤비는 폐서인이 되어 사약을 받아 죽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연산군의 폭정과 이어지는 피의 복수 등 작품의 2권에서는 1권의 계유정난 하나의 사건을 집중하여 다룬 것에 비하면 꽤 긴 시간을 숨가쁘게 달려온다. 그동안 수많은 사극과 역사 다큐멘터리, 책 등으로 보아온 내용이지만 이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은 역사는 <왕을 만든 여자>로 다시 봐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한씨의 인생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과연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하고 말이다. 이렇게 똑똑하고 당차며 권력을 향한 야심과 집념이 남자 못지 않았던 사람이 결국에는 조선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없었다는 사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의 도덕성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의탁하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의 출세, 아들의 미래에 본인의 인생을 걸어야 했던 조선 여인의 수동적인 삶은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그녀였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선지 다시 들여다 보게 된 표지 그림에서 그녀의 모습 뒤에 드리워진 익선관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대다수의 여성들에 비하면 한씨는 차선책으로나마 그녀의 남자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며 인생을 개척해 나갔던 인물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왕을 만든 여자>는 인수대비로 불리는 한씨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그녀가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에 이르는 세월을 헤쳐오는 동안 있었던 조선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한씨 개인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당시의 조선사를 두루 두루 펼쳐 보이고 있어서 마치 소설이 아닌 역사서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이 책이 한씨라는 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졌다면 그녀의 생각과 행동 등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또한 당대의 역사를 그렸던 여느 작품들과 확실한 차별화가 되는 동시에 이 책의 제목 <왕을 만든 여자>에 더 적합했을 것이란 아쉬움도 남는다. 반면 한씨라는 인물에 주목했지만 그녀만의 이야기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점은 저자가 평소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의 재해석을 중시하고, 픽션 또한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그의 지론을 재확인 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 도서를 읽고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 작성한 것입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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