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전아리 | 은행나무 | 20120223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공동의 비밀을 간직한 친구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결국은 그것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기에 침묵해야했던 5명의 소년과 1명의 소녀. 전아리 작가의 신작소설 <앤>은 이들 6명 사이의 삐걱거리는 관계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이전에 전아리 작가의 <팬이야>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청소년 문학의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큰 감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고교 시절부터 이미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해 나이에 비해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장편에서 어른색(色)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오랜만에 내놓은 이 작품 <앤>은 작가로서 치루는 그녀의 성인식과 다름 없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무리들 중 한 명의 친구 기완이 교내에서 도도하기로 소문난 희진(일명 앤)에게 고백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모욕과 경멸에 가까운 거절을 당하는 기완. 친구들은 그녀에게 보복을 하고 싶었다. 제 아무리 예쁘고 잘났다고 하지만 사람의 진심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은 그녀의 높은 콧대를 꺾고 적당히 괴롭혀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희진의 죽음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사건 현장에서 미처 도망치지 못한 기완은 범인으로 몰리고 결국 그가 친구들을 대신해 살인죄로 복역하게 된다. 이렇게 겉으로는 사건이 일단락 되었지만 사건 현장에 있었던 6명의 소년, 소녀에게 이 사건은 결코 끝나지 않는 일이었다.
<앤>은 과거의 살인사건에 뿌리를 두고 이 사건과 얽혀 있는 5명의 친구들-재문,진철,기완,유성 그리고 나(해영)-과 그들과 공동 운명체로 끼이게 된 여자 주홍의 기묘한 관계와 인간의 욕망을 잇따른 사건들로 드러낸다. <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해영이라서 책에서는 그의 심리 상태가 가장 섬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비춰지는 그의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는 주홍을 향한 그릇된 욕망과 집착이 꿈틀거린다. 약간의 스릴러 소설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너무도 쉽게 범인을 은연중에 노출시키는 오류를 범하며 장르적인 재미는 많이 반감시키고 있다. 누가봐도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이 결국 범인이었고, 그의 범행 동기 역시 굳이 서사의 도움 없이도 짐작가능한 것이었다. 만일 이 작품이 스릴러 소설을 표방했다면 그야말로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기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릴러적 요소는 <앤>의 재미와 긴장을 더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이고, 작가가 이야기 하려했던 것은 해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리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 상태였지 않을까.
<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힌다. 그리고 간간히 멋을 부린 문장들도 눈에 띠지만 그것은 작가가 청소년 문학에서 본격 장편소설의 세계로 접어드는 과도기에서 나타난 그녀만의 탈피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아리 작가에게 이 작품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그녀의 작품세계도 어떤 색깔로 그려질 지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한동안은 간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그녀. 그녀에게 <앤>도 그런 간절함의 연장선이었을 것 같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 도서를 읽고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 작성한 것입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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