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공 심선지, 다니구치 지로,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 | 이숲 | 20120215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고독한 미식가>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었다. 사고로 인해 한 사람의 몸에 두 명의 영혼이 깃들게 된다는 대강이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증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과로로 지친 상태였던 40대의 가장 쿠보타 카즈히로는 밤길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마주오던 오토바이와 충돌 사고를 일으킨다. 이 때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것은 열일곱 살의 소년 오노테라 타쿠야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안겨준 이 사고 이후 둘 다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먼저 눈을 뜬 것은 타쿠야였다. 그리고 그 순간 쿠보타 씨는 영원히 눈을 감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타쿠야의 몸에는 죽은 쿠보타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다. 쿠보타의 의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하지만 몸은 타쿠야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있었던 영혼이 뒤바뀌는 작품들과 큰 차이가 없다.
<창공>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다. 어느 순간 타쿠야의 진짜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타쿠야의 몸은 쿠보타가 지배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여전히 타쿠야의 안에 있었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쿠보타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에게는 꼭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은 가족인 아내와 어린 딸에게 그의 진심을 전하는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쿠보타와 타쿠야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은 의문도 들지만 의식을 회복하고 각자의 일상을 되돌아보니 두 사람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혹사한 쿠보타는 정작 가족을 돌보지 못했고, 재혼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족에게 등을 돌린 타쿠야는 스스로 가족들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사고 이후 두 사람이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은 그들 곁에는 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혼자서 감당하기보다는 아내와 함께 나누었더라면 쿠보타의 어깨가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내를 위하는 쿠보타의 마음도 십분 이해되지만 그렇게 갑자기 남편을 떠나보내고 뒤늦게 남편의 일기를 읽은 아내에게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이승에서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쿠보타가 타쿠야의 몸으로 가족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반면 쿠보타에 비해 타쿠야의 삶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그 점은 많이 아쉽다. 잠깐씩 타쿠야의 과거가 드러나며 그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음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타쿠야가 그렇게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내면이라던지 그가 죽음 이후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와 같은 것들이 많이 생략된 느낌이다. 따라서 결국에는 쿠보타의 이야기가 작품에서는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의 이야기에서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넓은 의미로는 타쿠야의 이야기가 전하는 바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는다고 하는데 세상에 이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겠는가. 특히나 가족은 가장 가까운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먼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한 걸음 떨어져 있으면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공>은 그러한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 도서를 읽고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 작성한 것입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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