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 시공사(단행본) | 20120625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지난 몇 년 동안 1900년대 초중반의 경성을 무대로 한 책, 드라마, 영화가 종종 만들어 졌었다. 게다가 요즘도 TV 드라마 중에 일제 강점기의 경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있고 몇 년 전 합천 영상테마파크를 직접 다녀온 경험까지 있어서 <경성 탐정 이상>의 시공간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요절한 천재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상(김해경). 그가 이 작품에서는 탐정으로 맹활약한다. 그것도 소설가 구보(박태원)와 함께!!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이상과 구보 이 두 사람은 경성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 시작하고, 이 사건들을 중심으로 총 7편의 연작 단편이 등장한다.
이상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도 이상이란 인물에 대한 최초의 호기심은 1998년 10월에 출간되 장용민의 소설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란 책으로 시작됐었다. 고교시절 읽었던 이 책에서 이상이란 시인은 기이하면서도 탁월한 천재성을 지녔으며, 암호화에 능했던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남겼는데 작가는 이 시의 낱말과 구절을 암호로서 조합하여 일본의 음모를 드러내는 팩션을 시도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교과서 속의 평면적인 이상을 최초로 입체적인 인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잊고 살았던 그를 <경성 탐정 이상>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앞섰다.
1935년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시작은 이상과 구보의 만남에서부터다. <삼대>로 유명한 염상섭의 호출로 그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이상과 마주하게 된 구보. 구보는 이상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두 사람은 합심하여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이것이 염상섭이 두 사람을 함께 부른 이유였고, 당대 문단을 이끌어 가던 '구인회'의 입회 자격 조건이었다. '구인회'에 가입하길 원했던 두 남자는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창경궁에서 죽은 모던걸의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해 낸다. 그리고 '구인회' 회원이 된 후에도 이 두 사람은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듯 수사를 펼쳐나간다.
이상의 타고난 직관, 추리력에 구보의 지식과 관찰력 등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책을 읽으며 재밌었던 점은 실존 인물과 당시의 역사적 사건 등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혼돈될 정도인데 소설가 김유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방언이나 간송 전형필이 직접 들려주는 간송 미술관의 설립 배경, 나비 박사 석주명의 잃어버린 나비 표본, 조선총독부 청사에 얽힌 비밀 등 모두 <경성 탐정 이상>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 배후에는 탐욕과 음모의 주범인 류 다마치 자작이 있었다. 따라서 독립된 사건이 결국에는 한 명의 범인을 지목하고 있는 구성은 꽤 흥미롭고 짜임새 있다.
마치 열린 결말과도 같았던 엔딩은 후속작을 기다리게 하지만 이상이 요절했다는 사실은 뒤집을 수 없는 진실이라 책은 아마도 여기서 끝일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이상이 다시 살아난 마지막 반전처럼 구보가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프록코트를 입은 의문의 남자 역시 이상 그였기를 바란다. 한국형 추리소설에 목말랐던 내게 <경성 탐정 이상>은 충분히 신선하고 재밌었던 작품이다. 우리의 역사라는 시공간적 배경 안에 실존 인물들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환생하였고, 거기에 마치 실제를 방불케하는 사건까지 더해지니 책으로만 보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8부작 정도의 연작 드라마로 만들어도 꽤 훌륭할 <경성 탐정 이상>. 이 책 덕분에 이상과 구보 두 남자와 함께 1930년대 경성 거리를 활보하며 느낀 그 시대의 낭만과 정취, 위험천만한 모험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구인회’ 동인지를 편집하던 창문사에서 이상(왼쪽 아래)과 구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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