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바이 동물원 - 2012년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 한겨레출판 | 20120713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1년 중에 그나마 한 달 남짓 숨을 돌릴 수 있는 - 야근이 없는 - 공연 비수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공연만 없을 뿐인지 맡고 있는 업무 특성 상 다가오는 하반기 공연에 내년 상반기 공연들까지 미리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본연의 업무 외에도 중구난방 일들은 주어지고, 납득이 되지 않는 인사 결정과 1년 내내 말만 돌고 있는 조직 개편 등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이직 생각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신다면 펄쩍 뛰며 걱정하실 일이다. 좀처럼 마음의 가닥은 잡지 못하고 있던 최근 어느날 <굿바이 동물원>의 서른 여섯 살의 김영수 씨를 알게 됐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고 일어나니 백수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영수 씨가 그랬다. 하루 아침에 정리해고 당한 그는 화장실에 빈 칸이 없어 - 이미 차지하고 앉아 울음을 삼키고 있는 다른 정리 해고자들 - 울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부업으로 시작한 마늘을 까면서 원없이 울고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무엇인가?'하고... 자아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던 즈음 그는 두 번째 부업 인형 눈 붙이기를 시작했고 곰인형과 바비인형의 눈 붙이기 기술이 늘어난만큼 본드 흡입 기술도 더불어 일취월장하기에 이른다. 본드 환각 상태에서의 그는 지구를 지키는 용사가 되었다가 희대의 정력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오래가진 못했다. 천만 다행으로 그만둬야 할 때를 알았던 영수 씨는 부업 브로커 일명 '돼지엄마'에게 공무원 버금가는 부업을 다시 소개 받는다. 체력 검사라는 만만치 않은 산을 넘어 드디어 입사하게 된 곳은 '세렝게티 동물원'. 그곳에서 영수 씨는 마운틴 고릴라로 다시 태어난다.
지금처럼 폭염이 계속되는 날 같으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일인데 영수 씨는 고릴라 탈을 쓰고 고릴라사의 룰을 익히며 적응해 나가고 그 안에서 비슷한 처지의 취업준비생 '앤' 대리, 전직 대기업 사원이었던 '조풍년' 과장, 전직 남파 간첩 '만딩고'를 만나 끈끈한 동료애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지나온 삶과 처한 현실이 영수 씨에는 동질감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 주기도 한다. 노동자의 비애는 고릴라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인간미를 그들은 '세렝게티 동물원'에서는 찾고 느낀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쟁시대의 쓸쓸한 뒷 모습을 그만의 언어 유희로 독자들에게 쓴 웃음을 던진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가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영수 씨가 마늘을 까고 인형의 눈을 붙일 때도 그랬지만 영수 씨의 아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리라 믿고 있는 통장을 깨지 않기 위해 마늘 부업을 하는 모습도 애처롭다. 아내의 눈물이 어떤 눈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영수 씨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
책을 읽으며 '동물원'과 이 '사회' 둘 중 어느 곳이 더 동물적인 곳인지 판단이 어렵다. 곁에 있던 동료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절벽 아래로 밀어버려야 하는 경쟁과 동료를 대신해서 성과급 부저를 번갈아 눌러주는 배려 사이에서 현대인들은 여전히 갈팡질팡 헤매고 있다. 어쩌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굿바이 동물원"이란 고별사는 영수 씨를 받아준 '세렝게티 동물원'이 아닌 영수 씨를 내쳐 버린 '사회'를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발목이 잡혀 정글 같은 세상에 갇혀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굿바이 동물원>은 블랙 코미디로 잘 보여 주었다. 따라서 쓰리고 아픈 이야기를 웃음과 풍자, 해학으로 승화 시킨 저자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 강태식은 소설가 아내를 두고 그 자신은 학원 강사로 일하며 15년 간 꾸준히 공모전에 도전했다고 한다. 포기 하지 않은 그의 의지 덕분에 불혹의 나이에도 장쾌한 홈런 한 방을 날렸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뽑아준 주최 측 덕분에 또 한 명의 반짝이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사람을 위로하는 글, 불꽃처럼 한순간에 터지는 글"을 쓰겠다는 그의 각오가 살아 숨 쉴 후속작, 벌써 기대된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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