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소한의 사랑 (양장) 전경린 | 웅진지식하우스 | 20120726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풀밭 위의 식사> 이후 근 2년 반만에 그녀의 장편을 다시 만났다. 이상한 일이지만 전경린 작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녀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고 있던 대학시절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한 장의 스틸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 책의 줄거리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내용의 어떤 부분이 내게 상당한 충격이었던지 책 제목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경린이라는 이름만 봐도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꽤나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마주한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그렇게 이번 신작 <최소한의 사랑> 역시 <풀밭 위의 식사> 때처럼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그녀의 손에 이끌려 파주로 향했다.
기간제 미술 교사로 일하는 주인공 희수는 새엄마의 유언과도 같았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이복동생 유란을 찾아 나선다. 표면 상으로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속정을 주지 못하고 살뜰히 보살피지 못했던 새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벗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어린시절 오빠와 공모하여 유란을 버린 것에 대한 죄의식도 한 몫하고 있었다. 당시에 느꼈을 유란의 공포와 상처, 친모에 대한 배신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희수와 그녀의 오빠 역시 그 사건에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외도 중인 남편과 부모에게서 도피하려는 사춘기의 딸 미양과 소원해진 희수는 무엇이든 마음 붙일 일이 시급했다. 계약 만료로 직장도 잠시 쉬고 있던 참에 미양마저 끝내 호주로 떠나자 더이상 거리낄 게 없었던 희수는 유란을 어떻게 마주해야 좋을 지 모를 두려움을 안고서 그녀가 사는 곳으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 유란은 없었다.
서른 다섯이 된 유란이 마지막으로 머물고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작품에서 묘사된 파주는 내가 상상했던 도시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파주하면 우선 북시티를 떠올리고, 그 다음에는 헤이리, 영어마을, 아울렛, 영화 '파주' 등으로 생각의 줄기가 뻗어 나간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사랑>에서 보여주는 파주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그곳이 어디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리는 버스 종점과도 같았다. 생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데도 작품 곳곳에서는 이 도시가 분단 국가의 국경 도시임을 꾸준히 상기시킨다. DMZ, 철책, 이산가족, 평화...이런 낱말들이 파주를 설명하고 있고, 이로써 파주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독자들처럼 희수도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곳의 주민이 되어가고 비로소 난파된 배처럼 흔들리던 삶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유란이 없는 빈 집을 지키듯 머물며, 희수는 유란이 알던 사람들-염을, 문신하는 여자, 명서, 현지, 은경, 혜지-을 만나 유란과의 간격을 좁혀 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희수는 내팽개치듯 버려둔 자신의 인생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제목이 <최소한의 사랑>이어서 멜로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이 작품은 드라마 장르에 가깝다. 굳이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자면 "상처 치유 소설"이라 하고 싶다. 공효진, 신민아 주연의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보고난 후에 들었던 느낌과도 비슷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만난 적은 없어도 두 자매의 정신적인 화해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희수가 그토록 찾고 기다린 사람은 유란이었지만 유란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희수 자신이기도 했다. 끝으로 희수가 기다렸던 또 다른 사람, 반짇고리 파는 노인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꽤나 심심했을 것 같다. 작품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던 이 노인의 사연이 밝혀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현실로 믿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웠던 상황도 있었으나 그 마저도 작품의 분위기와 잘 융화되어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만큼 나이를 먹은 기분이 들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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