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로의 정원 리앙, 김양수 | 은행나무 | 20120816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지금껏 도심의 단독주택 혹은 아파트에만 살아봐서 그런지 정원에 대한 로망이 있다. 잔디도 있고 매년 과실이 열리는 정원수도 있는 그런 정원이 있는 집은 멀리 가지 않아도 코 앞에 자연이 있어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으며 정원 돌보기도 취미 이상의 고된 노동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정원은 자연의 힘에 나의 의지가 더해져 채워지는 공간이다. 내가 원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타이완(대만)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라는 리앙의 <미로의 정원> 속 '함원'도 그 중 하나다.
타이완 드라마나 영화는 종종 봐왔지만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보았던 드라마나 영화도 시대극이 아닌 대부분 청춘 멜로물이어서 타이완의 역사나 문화를 알게 되었다 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로의 정원>은 타이완의 근현대사를 단편적으로나마 깊이 있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여주인공 '주잉홍'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으로 전개되는데 "나는 청일전쟁 말년에 태어나.."라는 소학교 3학년 작문 수업 시간에 써내려간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석에도 설명되어 있듯 이것은 그녀의 착각이다. 그러나 주잉홍의 아버지는 이 문장으로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된 후 속상해 하는 어린 딸을 달래며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훗날 편지로 간단히 타이완의 역사를 설명하며 이 말이 어떤 의미로는 틀린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청일전쟁은 타이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운명까지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다졌고, 랴오둥(요동) 반도와 타이완 할양에 막대한 배상금까지 챙겼다. 우리나라보다 더 오랜 시간 일본의 식민지여야 했던 타이완의 흔적은 작품 속에서 주잉홍의 어린시절에 묻어 난다. 그러니 "청일전쟁 말년에 태어나..."라는 이 말이 흘려버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야기의 과거에는 주잉홍과 아버지의 교감이 주를 이루고 성인이 된 후에는 주잉홍과 연인 린시겅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기억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방금 전 읽었던 과거의 에피소드와 시공간을 넘어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내용이 쉽게 와닿는 소설은 아니었다. 문화와 정서가 달라서인지 아니면 주인공이 나와는 다른 타입이라서 그런지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나 린시겅의 아이까지 가진 채 다시 과거의 내연남과 만남을 가지는 행동 등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작품에서는 은유나 상징이 많은데 이를테면 주잉홍의 아버지가 정원에 타이완의 수목인 다래와 봉황나무를 심는 것도 그저 정원수를 바꿔 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타이완의 한국어판 서문의 서두에 나오는 것처럼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도 타이완이 계엄령 아래 있었던 영향이 큰 것 같다. 내용 면에서 기대했던 바와 사뭇 달랐으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진 타이완을,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타이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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