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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by 푸른바람꽃 2012. 9. 2.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김형경 | 사람풍경 | 20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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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출간됐던 김형경 작가의 <성에>가 새 옷, 새 이름의 개정판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04년작을 읽지 않았기에 2012년작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녀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작품이 처음이다. 띠지의 광고 문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의 모순은 몰라도 실체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그려보였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외딴 곳에 고립된 남과 여, 그곳에서 발견된 세 구의 시체... 이 설정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9년차 주부 연희가 과거 연인 세중을 재회하며 시작된다. 뜬금없이 걸려온 동창의 전화, 신문 칼럼에서 10여년만에 마주한 세중의 손톱만한 얼굴이 연희를 세중에게로 이끌었다. 중년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각자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겉돌았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그들의 이야기는 폭설이 내려 고립되었던 그 겨울, 외딴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3년 간 만나온 남자친구가 있던 연희와 8년 사귄 약혼자가 있던 세중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돌연 강원도로 향했던 것은 사랑의 도피라기 보다는 다분히 충동적인 현실 도피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폭설에 길을 잃어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한 집으로 몸을 피한다.

 

그러나 허기와 추위를 달래러 찾아든 곳에서는 세 명의 망자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남자가 죽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한 여자가 죽어 있었다. 분명 이 집에 살던 사람들 같은데 왜 이 두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살당한 채 숨 져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이 아니라면 제3의 범인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죽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연희와 세중은 이들의 죽음을 추리하는 동시에 죽음과 고립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서로를 육체적으로 탐닉하며 서로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책의 원제가 <성에>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뭘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성에'는 그 사랑을 환상처럼 보이게 하는 어떤 장치 같았다. 손으로 깨끗하게 닦으면 그것은 현실이 되지만 '성에'가 낀 유리창 너머의 그것은 형태 조차 분간이 어렵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책의 원제를 이해하긴 어려웠고, 차라리 개정판의 제목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가 더 와닿았다. 폭설이 연희와 세중에게 유리창에 낀 성에였다면 폭설이 그치고 그들의 시야가 깨끗해짐과 동시에 불같던 사랑도 끝이 난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희에게 들려온 세중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다양한 서술자가 등장한다. 연희와 세중이 중심인 그들의 과거와 현재, 죽은 귀순자의 일기, 산골의 자연- 참나무, 박새, 청설모,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등은 같은 사건을 두고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켜 나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희와 세중은 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추측할 뿐이며 진실은 땅 속에 영원히 묻혀 버렸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겨울의 환상만을 쫓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롭다. 이 모든 것이 허상이고 거짓이며 환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삶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까봐 조심하는 모습이다. 아쉽게도 <성에>의 목차에는 있는 해설이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에는 없다. 이런 류의 작품을 읽을 때는 본문 보다 해설을 먼저 읽을 때도 있는데 왜 굳이 뺀 것일까? <성에>에 대한 해설이라 이 책과 맞지 않았다면 개정판 용으로 새롭게 작성해 실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아직은 이 책이 내겐 어렵고 버겁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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